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詩-봄, 로그인

담우淡友DAMWOO 2011. 4. 28. 20:46

이름  
  뚝지 (작성일 : 2011-03-10 11:05:08, 조회 : 237
제목  
  봄, 로그인      

봄, 로그인             /'뚝지'라는 필명으로 쓰다 



  일령 자란 아이디 풀어
  음절 하나씩 양지바른 글상자의 여백을 민다  
  제자리 못찾고 눈을 비비는 가운데 낱소리 하나
  걸음 서툴러 넘어진 마디까지 제자리에 서는 연습
  반복하고 몸 가눈 뒤 두터운 잠바에 비밀번호 붙여 보지만
  잘 열리지 않는 봄의 고른 이빨
  오프라인 습관이 완강하다  
  
  길섶 마른 풀잎 아래
  조금 남은 파란 밑동에서 번호 한 자리
  허리 긴 목련나뭇가지 묵묵한 움 속에서 또 한 자리
  연주황색 어린이집 바람벽 모퉁이서 낙서 같은
  묵음 하나 끝자리에 점자하면서

  많은 시간 눈먼 채 더듬거린 글자들이 몇 페이지이다
  클릭하면 원룸 바닥서 되살아나는 오자들 어루만지며
  스크롤바 오르내리다 검색 창에서 가까스로 시작한 문장
  갈잎 구르는 화면을 지나 마우스 내면까지 휘돌아
  올봄엔 마저 써야지 맺는말까지 듬쑥하게
  귀로 조율하면서 감은 눈꺼풀 들어 올리는 글눈들
    
  햇살 밀려드는 현관에서 되찾은 기호 하나 끝으로
  가슴 아래 수은주 눈금 오른다
  새로 낸 창으로 시샘 바람 차갑지만
  메일함에서 쏟아져 나오는 숙성한 낱말들 졸졸졸
  응달 밀어내며 액정화면 가운데를 흐른다
  문장을 꾸려 회로 굽이굽이 실리콘 밸리로 돌아오는 햇살  
  자판 고랑마다 새 음절 파릇파릇 돋는다.




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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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로그인이 만져질 듯 적나나하게 들어납니다.
자판고랑마다 새 음절 파릇파릇 돋는다는 말이 실감이 나네요,
나른해지려고 합니다. 벌써부터...
2011-03-10


박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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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따라갈 수 없는 메아리
잘 감상하고 물러갑니다.^^ 부러워라~^^
2011-03-11


가을과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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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가서 내음과 바람 모두 섞어 밝아진 옷 사이 겨드랑이에 끼워넣어야 제대로인데.
시인님께서 로그인 해놓으신 봄의 화면에 활자의 굴곡을 따라
저도 거닐고 있습니다.
내일이 주말이니까 마음껏 호흡하고 다시 로그인 하렵니다.
감사합니다.
2011-03-11


다음넷(김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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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로그인 할 때마다 쓰여지는 문장들 속을
들여다 보는 듯합니다
저도 뚝지님의 시심을 보면서
봄을 로그인 하였네요
봄 햇살을 통한 로그인을 하면서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아요
봄의 화면속에 펼쳐진 아지랑이의
문자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요
참 재미있습니다
2011-03-12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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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로그인 하자 준비된 봄의 정보들이 봄의 모습으로 들어차기 시작하네요, 뚝지 시인님, ^^*

 

 

 

評===============================================================================

창작시 부문]

고성만 (시인)


  이번 달 심사를 맡으면서 ‘시마을’ 시 수준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들, 힘이 느껴지는 발언들,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던 것은 선자의 눈이 어두운 탓도 있을 것이고, 작품들이 뛰어난 탓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달에 저는 시의 제목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최우수작, 우수작에 선정되신 문우님들 시 제목을 우선 열거해보겠습니다. ‘봄, 로그인’ ‘이발소 있는 골목’ ‘오랜 침묵이 말하는 것’ ‘순두부’ ‘동백꽃’ 등 비교적 구체적이고 무난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봄, 로그인’은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고 봅니다. 고유어와 외래어, 구체어와 추상어의 결합으로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이발소 있는 골목’은 ‘이발소’에서 조사 ‘가’가 빠짐으로 해서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줍니다만 무난하다고 봅니다. ‘오랜 침묵이 말하는 것’은 ‘침묵’이라고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만 나름 무게감이 있어 보입니다.
  제목은 글의 얼굴이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성을 드러내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제목은, 김기택 시인의 시 제목(예를 들면 꼽추, 사무원, 소, 바늘구멍 속의 폭풍)처럼 아예 추상적이거나 아예 명료한 것이 좋습니다. 어중간한 것이 가장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우수작]

봄, 로그인

  ‘글쓰기’를 주제로 글을 쓰는 시입니다. 그만큼 섬세하고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 같습니다. ‘봄’이라는 계절을 대상화하여 글쓰기와 결합함으로써 고도의 지적 유희를 즐기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음절 하나씩 양지바른 글상자의 여백을 민다’ 즉, 글쓰기의 시작입니다. ‘양지바른’이라는 표현은 봄이 오는 과정을 말하겠지요. 그리하여 ‘길섶 마른 풀잎 아래/ 조금 남은 파란 밑동에서 번호 한 자리/ 허리 긴 목련나뭇가지 묵묵한 움 속에서 또 한 자리/ 연주황색 어린이집 바람벽 모퉁이서 낙서 같은/ 묵음 하나’와 같은 멋진 구절을 낳았습니다.
  봄이라는 자연과 글이라는 인간이 자연스럽게 어울림으로 해서 읽는 이에게 신선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다만, 너무 지루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딘가 맺는 구절이 부각되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다음엔 좀 더 과감한 작품 쓰시기 바랍니다.


201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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