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철로 위에 詩가 놓이면

담우淡友DAMWOO 2024. 7. 4. 07:48

무궁화 필 때

 

                                            조담우

 

왕복 진입로 길이의 된장독 열 사이에서

뒷산 등에 얹은 어머니는 일일이 덮개 열고

소금빛 햇살을 넣는다

 

그녀의 손에서 출발한 장은 택배 상자에 실려

장을 먹고 사는 나라 집집마다 문앞에서 내리고

잘못 내린 적이 없는 맛과 향이 고스란해

 

수송 역사상 오래 정확한 맛의 도착들이 이루어진다

 

출발 예약을 저장한 장독 대열에는

도드라지게 지켜 온 자리가 차란차란 견고하다

한 점에 닿을 선을 품고 있다

 

주문과 운송이 두 줄로 곧은 열의 끝

끝에서 어머니가 깜박 사라질 것 같은 적이 있다

엄마 내일 둘째 누나 생일

뜸했던 아버지 집에 가요

작은 단지에 담아 놓은 장의 용량에는

평생을 평행으로 달려온 부부 노선의 무게가 철근이지만

장 냄새가 서로 코에 닿는 걸 보면 정주행 중이다

 

왕복을 어기지 않고 돌아온 시점에서 허리를 펴며

잘 익어가고 있다

품질 안내 구구구가 멧비둘기 노래를 타고 들려온다

 

어머니가 일부러 역마다 일일이 들러가는 기차를 탈 때

차창에 활짝 활짝 피는 풍경을 항아리 만한 몸에 담고

정차할 때마다 살아온 맛과 냄새의 기억에 미소를 버무린다

 

숙성해서 깊었던 시간의 마디를 지나

집에 오면 근심을 삭이던 장독대 어귀에서

잠시 잊었던 삶의 소실점에 닿으면

 

저녁 해가 비스듬히 내려와 맞이할 때까지

끄트머리에 오뚝한 장독으로 정지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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