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유채화(油彩畵) 11

가을 장미

이 하얀 장미는 시들 줄 모른다. 그림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장미의 기억을 이식 받은 조화(造花)라서 늙지도 않고 피어 있다. 사람도 인공의 몸에 기억을 이식하면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사람의 본성을 잃지 않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영화의 스토리처럼 시-도-해-볼.....헐! 사람이 꽃이라면 몰라도! 꽃의 기억이 고스란히 이식 된 조화 앞에서 생명(生命)이란 무엇일까. 이태원 발 꽃의 슬픔이 가을 바람처럼 스산하다.

파스텔畵 한 폭

고향 집 뒤란에 장독들이 다소곳이 모여 앉은 장독대. 할머니로부터 어머니를 거쳐 맏형수로 이어지는 장독대 가는 길에는 그녀들의 발자국이 지문처럼 묻어 있다. 나는 그 장독 안의 되장과 고추장 그리고 간장을 먹으며 자랐다. 오형제들과 숨바꼭질 할 때 숨는 장소가 되었고, 울 밑에 닭의장풀, 애기똥풀꽃 필 때, 혼자서 찾아낸 사금파리로 토종닭처럼 울밑의 흙을 파곤했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 정착하고부터 장독대는 고향의 아이콘이 되었고, 이콘화(icon畵) 그리듯 장독대를 유화(oil painting)로 파스텔畵(pastel painting) 로 그렸다. 주방 벽에 걸어 놓고, 유년 시절의 장맛이 주방 음식에 스미어 들기라도 하듯 식사를 할 때는 간을 더하듯 바라보곤 한다. 고향의 맛이 묻어난다. 오래 전에 뒤..

꽃병

유화(油畵)의 장점 중에 '터치의 자연스러움'이 있다. 안료를 묻힌 붓을 자유롭게(아무렇게나) 칠하거나 찍어도 그 결과는 억지로 만들어 찍은 것 같지 않다. 그러한 붓자국들이 모여 형태를 이루고 색의 군집을 형성했을 때, '자연의 발걸음이 지나간 자국'처럼 자연스럽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그림이 도시적 감성이라면, 미완성인듯 거친 표면의 '터치의 자연스러움'의 작품은 거친 전원의 감성을 지닌다. 어쩌면 '현대회화의 출발점'은 바로 이 자연스러운 터치로부터의 시작이었을 수도 있다.

장미 유화

계란 노른자와 물, 무화과 즙을 접착제(接着劑)로 안료를 이겨 그림을 그리는 템페라(Tempera)화가 너무 빨리 건조 되어 번짐효과와 낮은 내구성이 문제 되었다. 그 보완으로 발굴, 시작된 유화(油畵 oil painting)는 르네상스 초기를 기점으로 확산되어 근현대 서양화(西洋畵)의 근간을 이루는 화구가 되었다. 21세기 나의 화실까지 이어진 유화의 안료(顔料)는 종종 수채화에서 구현하지 못하는 회화(繪畫)의 심층적 표현을 체험하게 한다. 유화물감의 안료가 주는 임파스토(impasto물감 두텁게남기기), 글레이징(glazing광택나게 코팅하기), 블렌딩(blending혼합색 내기) 등의 효과와 더불어 수정과 덧칠이 용이하고 물체의 질감을 실감 있게 구현하는 데에 탁월한 기능을 제공한다. 나는 아직 유..

다리가 있는 냇가

김천에서 거창 쪽으로 59지방도로 금남로를 따라 가다 보면 구성면이 나온다. 감천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도로와 엇비슷 흐르는 면내의 냇가엔 한여름 나무 숲이 짙은 녹색 그늘을 드리운다. 이른바 "구성냇가'의 풍경이다. 여름내내 피서객으로 물놀이 즐기는 아이들 목소리가 새소리처럼 어우러지는 곳. 매미 소리도 숲과 함께 우거지는 곳이다.

연화지 (鳶華池)

김천 교동 대학로 변에 위치한 연화지(鳶華池)는 연못에 연꽃이 연상되는 연화지(蓮花池)로 생각이 닿겠지만, 연(鳶:솔개 연)자가 연꽃을 지칭하는 연(蓮)자가 아니다. 하지만 봄에는 벚꽃이 쏟아질듯이 피고, 여름에는 부풀어 오를 듯이 연꽃이 가득 핀다. 연(蓮)자가 어울릴 법한데, 1707년 김천으로 부임한 윤택이라는 군수의 꿈에서 비롯 된 고사가 굳이 연(鳶:솔개 연)자를 후대에 전해 '봉황의 꿈'과 더불어 봉황대(鳳凰臺)를 세워 놓았다. 빛날 화(華)자를 더해 '화려한 꿈'을 꿀만한 곳인가 싶기도 하다. 햇살 눈부신 날의 벚꽃 풍경은 그야말로 화사하기가 이를 데 없다.

정물 유채

꽃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 얼굴을 대고 그들만의 언어로 속삭이고 있었다. 그들의 언어를 읽을 수는 있어도 대꾸할 수는 없었다. 들려오는 게 아니라 볼 수만 있는 언어는 늘 그렇게 문장 따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음파처럼 진동해와 내 각막을 두드리는 꽃의 언어는 색깔을 입고 더욱 선명하게 내 망막으로 투영 되었다. 그 언어를 캔버스에 받아 적었다. 의미를 모를지라도 색글자로 수록 된 꽃의 언어는 복사를 해서 붙여넣기를 해도 아름다운 속성이 변하지 않았다. 꽃 아래 과일들이 덩달아 속닥이고 있었다. 그림이 있는 캔버스에 유채 안료를 덧그리고 덧칠해서 완성한 유화(油畵) 작품. 소국 무리 정면은 다소 선명하게 그리고 좌우 부분과 상층부의 뒤로 넘어가는 부분은 흐릿하게 철하여 원근감을 주었다. ..

전망 좋은 어느 가을 풍경

자이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의 올 가을(김천시 부곡길) 풍경. 멀리 보이는 사랑채 아파트는 풍경의 한 부분을 이루는데 지난 봄부터 입주가 시작된 자이 아파트가 이 풍경 속에 생경하니 끼어들었다. 자이아파트는 훤칠하니 '사랑스러운 무드의 골덴 원피스' 같았지만, 탁 트인 저 풍경의 일부가 되지는 않았다. '풍경은 추억이 되면 더 아름다워진다' 그럴까? 기억하기 편한 그림 한 폭으로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