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가을 5

가을 메일함

가로수 갓길에 가랑비 쏟아지는 낙엽 메일 대량으로 쌓인다 스팸일까 몇 장 거미 줄에 걸려 느낌이 븕은지 떨면서 거미도 읽는 가을 메일 표정이 청량한 쑥부쟁이도 수두룩 읽는다 갈대 꽃 스것스것 바람의 메일에 고개 젓고 하늘 파랑 물결 읽던 물오리 떼 상류로 오르면 핑크 뮬리 밭으로 간 바람의 전달 내용 가을이 채색화를 완성하는 중 하늘에 흰 답글 몇 장 띄워 놓고 들에는 꼼꼼히 가로닫은 곤포사일리지 갈빛으로 꼬리 댓글 물들인 강아지풀 풀 가을 메일이 다채롭다 발길에 채이는 나뭇잎 잎 가을은 누구든 비번 없이 읽는 진채 메일의 계절이다.

글(文) 2021.11.10

가을 나무

알곡이 여물어 가을을 알리지만 꽃을 보낸 열매가 알곡과 더불어 가을을 떨어뜨리지만 가을을 가을답게 맞이하는 나무는 온 몸으로 가을을 서술한다 벌레가 받침을 먹어버린 이파리에서 땅에다 일기를 적는 낙엽에 이르기까지 나무가 빠뜨린 이야기는 해와 바람이 거들어 적는다 공원의 뜨락까지 가득 낙엽을 채울 때면 그 페이지에 서리도 한 문장 젖빛으로 적는다 탈고를 끝내고 선명하며 간략한 줄거리로 곧 또 한 해의 한 권을 땅 위에 꽂아 놓는다.

글(文) 2021.10.22

타향의 가을

고향 논에도 지금 쯤 벼가 익고 있겠지 겸손한 아버지 대신 자신만만한 맏형의 손에 자란 벼가 이견 없이 고개를 숙여 안으로 여물고 있겠지 벼멸구 견뎌낸 벼가 내면을 단단하게 채울 때 쯤에는 성숙한 메뚜기도 원숙한 몸짓으로 응원하고 방아깨비가 숙이네 정미소 전기 모터 소리를 낸다 뜸부기가 날지 않아 논바닥에 개구리밥 가득 띄우던 여름이 쓰름매미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뒷산 위로 올라가고 그 때 벼꽃은 지난해 가을 보다 눈부신 금빛 마련했을 것이다 코로나가 집앞 개울 건너 아스팔트 신작로를 따라 지나갔지만 마스크도 안 쓴 벼들은 마이삭 하이선 바이러스를 이겨 냈다 맏형이 아버지처럼 기대한 풍작을 암시하고 있었다 추석에 못 간 고향의 황금벌판을 타향의 논에다 펼쳐 놓았다 고향의 논에서 풍기던 벼이삭의 마른 풀 같..

글(文) 2020.10.03

잠자리 접기 2

"잠자리 동동..." 풀잎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향해 검지를 뻗어 빙빙 돌린다. 잠자리를 홀리는 주문이다. 가는 목에 눈이 큰 잠자리는 손가락 원을 따라 머리를 갸웃거린다. 겉눈에 무수한 속눈을 가진 잠자리는 시선이 한 번 헝클어지면 잘 날지 못한다(?) 휘두른 빗자루에 한 번 얻어 맞으면, 쉬 날지 못하고 파닥거린다. 시선을 간추리기까지 한동안 그러다가 다시 날아간다. 잡은 잠자리의 배 뒷부분을 똑 잘라내고 강아지풀 가닥을 꿰어 날린다 . 시집 보낸다며 말도 안 되는 짓.... 아주 짓궂고 못된 어릴 적 만행이 생각난다. 커서 알았지만, 그 잠자리는 시집은커녕 짝짓기도 못하고 죽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덧 고추잠자리는 천연기념물로 등극했고, 나 같으면 밀잠자리, 된장잠자리, 장수잠자리, 물잠자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