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로부터 어머니를 거쳐
지금의 종부에 이르기까지
햇살 바른 뒤란의 울밑을 지켜온 고향 집의 장독대.
호박꽃이 필 때 된장잠자리 밀잠자리 종종 와서 앉았다 가고
메뚜기가 왔다 가고
배추흰나비 제비나비 호랑나비
하늘빛 부전나비도 앉았다 갔다.
무엇에 홀리듯 뒤란으로 돌아가면
소금 맛 섞인 장 냄새 다가와 코밑을 간지르는 장독
할머니의 손이 스쳐갔고
어머니의 막장 찌개 냄새가 지나갔고
고향을 찾을 때면 여전히 막장 냄새 끓는 종부의 손길이 구수한
고향집의 맛의 역사가 고스란한 장독대.
캔버스 100호에다 몇 날 며칠 유화 안료를 처발라 그린 동기가 충분했다.
호박꽃에 앉았다가 날아가는 뒤영벌(호박벌) 소리가
한겨울 싸락눈 쌓이던 장독 뚜껑 위의 눈오는 밤의 소리도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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