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세밑에는 촛불 켜자

담우淡友DAMWOO 2022. 12. 31. 08:44

해도 일찍 빛을 끄는 세밑 밤에는 조명을 끈다. 지나온 날들 중에 한 곳을 비추면, 드러나선 안 될 時와 時 사이, 分과 分 간격, 질러대는 시침 분침 따가와, 마구 미는 초침에 가쁜 숨이 드러나. 스폿 라이트 대신 촛불 하나 켠다. 책상의 둘레가 사각 방을 채우고 전등빛에 눈이 부셨던 책들이 깨어난다. 책은 친구가 아니다. 눈 안부신 촛눈에 눈을 크게 뜨고 내가 모르는 현재 시간 읽어 준다. 책의 언어는 구어체가 아닐 때, 문어체로 양양할 때 촛농도 조용히 흘러내린다. 책날개 모서리에 액상 크롬 철물로 다가와 글자에 힘을 싣는다. 나는 2022년 그 년한테 바람을 맞을 때 힘센 고딕체를 읽고, 그 년으로부터 키스를 당했을 때, 우아한 궁체로 입가를 서술한 것. 나는 그 플라우어 쉬폰 스커트 자락에 잠시 잠시 혼절하고, 연분홍 레이스 소매 아래 보름과 그믐 밤, 모자란 잠을 쫒느라 모로 누은 자정과 새벽까지 초순에 먹지 못한 유선 찾아 겅중겅중, 임인년(壬寅年) 그녀도 끝내 안 준 페이지 있다. 현관의 자동점멸 전등도 끈다. 신고 벗는 걸음의 덧신들이 눈을 뜰 때마다 건너지 못한 행간들로 한칸들여쓰기 어긋나 있다. 무릇 신발은 열과 행을 가지런히 건너는 일상의 징검다리. 지나온 발자국들이 결핍과 슬픔을 날인할 때 현관문 앞에 서성이던 時針을 떠올린다. 촛불을 켜자 머리맡 어둠 안에서 헌 것 아닌 새 시간이 재깍거린다. 2023년 그녀의 머리채를 秒針 너머 당긴다.이미 자란 흑발이 허리까지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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