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李孝石, 1907~1942 강원도 평창)의 '메밀꽃 필 무렵' 소설에서 허생원이 자기 아들일지도 모르는 동이와 함께 대화장(5일장?)으로 가던 달밤 으슥한 길에서 메밀밭이 있는 산길을 지날 때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소금을 뿌린 듯?'한 광경은 실제로 달밤에 메밀밭을 본 사람이면 조금 다를 수도 있다. 교교한 산간의 달빛 아래 부옇게 보이는 메밀밭 흰꽃은 굳이 소금이 아니더라도 '어머니의 푸르스름한 옥양목 저고리 빛'이라고도 (내 느낌으로)여길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메밀꽃의 달빛 광경을 처음 소금빛으로 묘사한 효석의 감성은 탁월한 시적(詩的) 감각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강원도의 척박한 산간 지역에서 잘 자라는 메밀은 '산의 밀'이라는 어원답게 강원도를 잘 표현하는 작물 중에 하나다.내 유년시절에도 메밀밭의 달빛처럼 어려 있는 메밀꽃이다. 7월 여름에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화전(火田)으로 일군 삼태봉(강원도 홍천군 남면에 있는 산 이름) 밭으로 메밀밭 갈러가는 아버지와 삼촌들 따라 가던 길이 있었다. 황소 두마리가 끄는 쟁기로 돌이 많은 고랑을 내고 메밀(모밀) 씨를 뿌리고 흙을 덮는 일은 반나절이 꼬박 걸렸다. 새참으로 먹던 칼국수의 아침 맛은 여전히 생생하게 입안을 맴돈다. 그 메밀을 늦가을에 수확하면, 이듬해 초 설날 차례상에는 어김없이 '메밀적(전)' 이 홍동백서(紅東白西) 왼쪽에 수북이 육면체 모양으로 올라 있었다. 그해 기제사(忌祭祀) 때마다 단골로 젯상에 오르는 전이 바로 메밀전(메밀적)이었다.
배춧잎을 찢어 넣어 부친 메밀전은 약간 거친듯 푸석한 식감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별로 맛없는 음식 중에 한 가지였다. 그런데 장성하고 나서 타향 생활을 하며 고향의 그리움에 젖을 때 우연히 메밀전을 대하면 유년시절의 정경이 뇌리를 스치며 향수를 달래준다. 어린시절의 입맛과 다르게 혓바닥과 입천장을 스치는 거친 식감이 고향산천의 초목 향기와 신선한 공기의 맛처럼 가슴 찡하게 소박한 감동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김천(金泉)에의 타향생활이 40여 년을 넘기다 보니 고향의 유년시절이 장편소설 버금가는데 우연히 같은 지방의 지인으로부터 메밀전을 받고 향수병에 눕지 않을 수 없었다. 조곤조곤 옛이야기 듣는 듯 한 점 한 점 음미하면서 먼 먼 어린 시절을 한바퀴 돌아왔다. 특별히 까까머리 학창 시절에 읽었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그 시절 감성(感性) 깊은 울림을주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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