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분류 전체보기 1049

소금빵

마음이 짭짤했어요 맛의 근원이었죠 소금이 들어간 빵에는 맛의 근본이 있어 뒤에 따라오는 식도락의 여운이 순해요 달콤하게 유혹하지 않고 빵의 위치를 뽐내지 않으며 조용히 맛의 본질을 표면화 하죠 어떤 사람이 시식을 하든 입맛을 차별하지 않고 단맛에 절은 혀를 다독여 줘요 빵 때문에 단풍 붉은 나무의 선득한 바람이 우수수하거나 첫눈 내리는 창밖이 마음 뿌옇게 흔들릴 때 기다리던 메시지가 오지 않는 오후라면 소금빵에 입술을 내밀어 보죠 너무 사랑한 나머지 미운 눈사람이 깜짝 귀밑까지 당도할지도 겨드랑이 깊숙이 젖을 수도 사랑빵의 근원이었죠. ~^^*

글(文) 2023.11.23

매듭

조 긍 나는 다 보이는 불편 안에 묶여 다 보이는 적응 안에 묶여 있는 역경을 보네 역경은 다 보이는 적응 안에 묶여 다 보이는 불편 안에 묶여 있는 나를 보네 우리는 서로 다 보이는 난관에 묶여 서로 바라 보네 나는 불편을 풀고 편안을 내 보내 역경 안으로 들여보내면 들어온 내 동공을 역경이 제 눈 속에 동여매네 적응이 역경을 풀고 눈빛을 내 보내 불편 안으로 들여 보내면 들어온 편안의 눈동자를 눈곱과 함께 내 눈속에 동여매네 내 눈에 눈곱이 끼고 함께 들어온 편안의 온몸이 근지럽네 긁을 수 없어 껌뻑이는데 내 눈빛을 눈 속에 묶어 넣은 편안은 알러지가 생기네 견딜 수 없는지 역경에 매달려 버둥거리네 역경을 풀고 나온 적응의 목청이 내 귀에 꼭꼭하면 불편을 풀고 나가 적응 안으로 들어가는 내 목소리가 ..

글(文) 2023.11.10

붕어빵

입동(立冬)의 입김이 차다. 볼에 입맞춤을 하는데 놀라서 얼른 떨어진다. 어루만지는 귓불조차 시려서 옷깃을 올린다. 거리의 길바닥에 구르는 낙엽마저 옹송그린다. 그림 그리는 화실 안을 비치는 아침 햇살이 아직 찬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붕어빵 한 봉지를 들고 들어온 이가 반갑다. 여러 명이 두 개씩 받아서 입동 입맞춤에 얼었던 입이 구수하게 녹여 준다. 즐거운 웃음이 번진다. 한 개를 붕어의 머리부터 입술 안으로 밀어 넣는다. 붕어는 거부하지 않는다. 파닥이지도 않으면서 따뜻하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고 했다. 빵이 된 붕어가 붕어일리는 없다. 하지만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붕어빵은 이름을 남긴다. 꼬리까지 모두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가기 전과 들어간 후에도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맛있는 이름이다...

글(文) 2023.11.08

종명終命

죽음이란 내가 기억하는 나를 잊는 것 침묵 긴 개울이 몸 가운데로 흐르고 내가 어느 물가에서 머뭇거리든 어느 여울에서 맨발을 담갔든 내가 나를 기억하는 사철 저녁마다 잊을 수 없었던 개밥바라기를 바라보지도 노을에다 붉어진 눈을 붙여넣지도 그 때의 가슴 타는 순간에서 빛나던 내가 나를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내가 잊는 것 나를 기억하려고 애썼던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으며 언젠가 그들을 생각하지 않았던 날들을 낱낱이 기억의 뒤편으로 밀어내며 내가 그들을 잊지 않았던 나의 됨됨이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던 아침과 한낮의 눈부신 기억에 대해 아, 그 게 나의 봄이었을지라도 가식 훌훌 벗어던졌던 여름날의 자맥질이었다는 것 얼음 아래 흐르는 도랑물조차 차가워지지 않는 언제 꽃이 피든 다시는 잊..

글(文) 2023.11.04

삶이란 내가 나를 기억하는 것 기억이 나를 부르고 내가 어디서 무엇을 돌이켜보든 어느 순간 내일을 상상하든 내가 나를 기억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나를 거기에 가게 하고 머무르게 하고 기꺼이 이기적이게 하는 것이다 깜빡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바보 같이 보이더라도 내가 나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나를 잊은 사람들을 내가 기억하는 것 나를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언젠가 내가 그들을 생각했던 날들을 내가 기억할 때마다 눈에 슥 미소를 지으며 내가 그들을 잊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나를 까맣게 잊은 사실에 대해 후훗 가을 낙엽 같은 마음을 부스럭거리는 것 서리 눈발의 겨울이라도 가슴 훈훈하게 뒤척이는 것 잊지 않으면 기억이 단단해지는 생존과 이타 사이의 적응이다.

글(文) 2023.11.01

광주호 여행기

별뫼별곡 운율 따라 '엇던 디날 손이 星山(성산)의 머믈며셔' (어떤 지나가는 손님이 성산에 머물면서)... 내가 그 어떤 지나는 신객(新客)이 되어 프롤로그 나들이로 광주호를 찾았을 때는 11월 초순이었다. 가을 끝자락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햇살이 눈부시면서 따스했다. 추색 깊은 성산(星山별뫼) 숲에 별은 총총 박혀 있지 않았어도 대신 광주호 수면 위로 소슬바람에 이는 물비늘이 반짝이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차 밖으로 나오자 친구를 통해서 미리 '하늘가에 떠 있는 구름이 상서로운 돌로 집을 삼은', 그 '샘물 흐르는 찻집'의 찻물 같은 여인과 함께 광주호의 상류를 마시고 자란 현지 태생의 동창 친구가 이정표처럼 서 있었다. 여기가 무등산 자락의 별뫼에서 광주호를 내려다보는 승지(勝地)라는 안내가 그들의 소..

글(文) 2023.10.13

밤(栗) a chestnut

https://damwoo1.tistory.com/15709190 민재 그 애가 세상 밖으로 어쩌면 우주 안으로 아주 떠난 뒤 기억 밖으로 어쩌면 관심 너머로 아주 가 버린 후 잊었지만 장담할 수 없을 때 가끔 기억나지만 그 건 바람이었을 때 시간의 마디였을 때 가을 크고 잘 여문 밤알 속에 여기 있었던 원자로 스미어 여기를 기억하는 양자로 입자로 가득 영글어 왔다 그림을 그리다가 떠난 아들 대신 그림을 이어 그리던 엄마의 손에 알알이 주워 전달 되었다 몸으로 올 수 없어 문자로도 전송할 수 없어 단단하고 윤기나는 밤톨 타임머신 타고 왔다 생생한 파일 안고 그 파일 여는 사람이 지구에 아직 사는 한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왔다 민재 여전히 까까머리 청년으로. https://damwoo1.tistory.c..

글(文) 2023.09.22

추석이 오면

나는 송편 빚던 손가락을 펴고 마주앉아 있던 얼굴 콧등에 반죽 한 점 얹겠네 그러면 미소가 매끄러워 떨어지는 반죽을 얼른 손바닥으로 받아 빚고 있던 송편에 비벼 넣겠네 솔잎 깐 시루에 쪄 내면 콧등 땀이 밴 맛이 나서 한 입 두 입 나눠 먹겠네 아직 더 남은 반죽에 마주앉아 있던 미소를 밤톨과 함께 소를 넣어 쪄내자마자 손바닥에 호호불며 식힌 다음 고소하게 부서지는 송편 속의 까르르 한 줌 배가 불룩해질 때까지 계속 깨물어 부스겠네 이튿날 담장너머 이웃 집에 내용 안 밝히고 그냥 나눠 주겠네 추석이 와서.

글(文) 2023.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