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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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봄

오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와 봐야 서둘러 왔을 때 보다 못했을 것이다안 올 수만 있었다면 계절의 전제군주에게가봐야 갈 때 보다 더 못할 걸요대들다가 동장군한테 밀렸을 것이다대드는 꼬라지가 하도 귀여워웃음 잃었던 철권이 눈물 찔끔콧물 후륵 훔쳤을 것이다그래도 가라 했을 것이다태양계 섭리 따라 가야만 한다고가지 않으면 득세한 겨울이 얼음장군 한풍 수하인해전술 연대장 눈보라 대동하라메아리 산골짝에서반달가슴 곰 자매 으르렁댔을 것이다도토리 묻어 둔 곳 다람쥐가 잊었을 것이다실눈 뜨고 기다리던 꽃들이 뭐야 뭐야 새 움 트던 나무들이 어어 헐 어어 헐잡초들마저 제대로 눕지 못했을 것이다오기는 했다마지못해 와서 할 일 거지반 했다다만 그만 이만 저만 동장군 수하들이사철의 일정표에도 없는열불 산불 도깨비불  싸질러댔다..

글(文) 2025.03.31

꽃샘 시샘

눈이 와서 쌓여서 집앞에 눈사람을 만들었던 지난 동지 섣달. 순수한 아이들 발길에 눈사람은 부서졌고, 봄이 매화에 곁눈질하며 오다가 물가의 얼음을녹이고, 개구리를 깨우며 같이 왔다. 개나리 목련 불러 깨우고 이른 벚꽃까지 서둘러 복귀 시키더니 찬바람에 멈칫 시샘을 눈치 긁었다. 꽃샘을 모를리 없겠지만, 플라우어 시폰 원피스 입고 살랑이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드러난 종아리가 시려웠나 보다. 이미 떠났어야 할 동장군(冬將軍) 수하들(?)이 행짜를 부리고 있다. 봄이 시샘의 바리케이트를 넘어 단호하게 와야 할 결정을 못내리고 특유의 부드러운 안목과 성정(性情)으로 우유부단... 삭풍의 눈치를 보고 있다. 봄은 언제나 현명했다. 어김없이 꽃을 먼저 피워왔던 소신이나 깨끗한 연두빛 잎새를 피력할 때도 온화한 손길과..

글(文) 2025.03.30

실화失火의 기억

일곱 살 쯤 이맘때였을 것이다. 개울 고수부지에 건조한 봄바람이  이아치게 불고 있었다. 그네는 고사하고 미끄럼틀 하나 없는 산골에서 갈색으로 빛 바랜 억새 숲이 나부끼고, 버들개지 피는 냇가는 뒷산과 더불어 또 하나의 자연 놀이터였다. 5형제 중에서 바로 아래 동생 둘과 찬바람을 콧등으로 넘기며 냇가로 나와 슬쩍 가지고 온 성냥을 꺼내 들었다. 아버지의 라이터를 함부로 손댈 수 없었던 시절이라 머리가 빨간 성냥은 부엌 부뚜막 어디서나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아궁이에 마른솔잎을 넣고 성냥을 탁 그어 불을 붙일 때면, 노랗고 붉게 금세 타오르는 불꽃이 언제나 꼬물꼬물 금빛 벌레였다. 성냥곽에 붙어 있는 적갈색의 마찰면에 머리 빨간 성냥개비를 부딪쳐 마찰할 때의 야릇한 촉감은 성냥을 놀이기구로 ..

글(文) 2025.03.29

산불 山火 forest fire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나는 산(山 mountain)이 놀이터였다. 집 뒤란 울타리와 맞닿은 뒷산으로 뻔질나게 오르내리며 활엽과 침엽이 내뿜는 초록 향기를 마셨다. 커다란 밤나무에서 꾀꼬리의 노랫소리가 이파리 사이로 구슬 구르듯 들려오고, 까치와 까마귀, 참새들의 합창도 끊이질 않았다. 볼을 스치는 활엽들이 부드러웠고, 침엽이 찌르는 통점은 압점으로 느끼는 성장통의 한 점 한 점이었다. 초록의 울창한 계절을 지나 활엽이 다 스러진 나뭇가지는 차가운 하늘의 정기(精氣)를 깁는 뜨개바늘 같았고, 칩엽의 짙푸른 나무는 갈색의 숲에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선비(성삼문 成三文 1418-1456 조선)의 기상을 닮았다. 두툼한 활엽의 낙엽을 밟으며 오르내리면, 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푹신한 온기를 느낄수 ..

글(文) 2025.03.28

수은주水銀柱💕의 12°c

내가 사는 추풍령 고개 아래사철 같이 사는 그녀의 가슴 온도가 한 뼘 위로 올랐네작년에 즐겨 입던 플라우워 스커트발목이 드러나네부드러운 바람이 감겨 들면걸음 사쁜사쁜추풍령 고갯길 걸어서 내려오네 나는 무작정 손을 잡네선수는 아니지만여심(女心)과 춘심(春心)이 동시에 맞추는 과녁을 갖고 있네엑스텐(X10)이 윙크할 때내 맘은 쓰러지네가누지 못한 윗몸을 구부리고붉어지는 회심(花心)의 입질을 하네 아직 이르네잎샘의 심술이 고갯마루 서성이네그녀가 한 뼘 아래 내려와 토라지면내 과녁에 찬바람만 꽂히네 견뎌봐요 수은주, 그녀의 종아리가 여전히 붉네춘심을 잊지 않을 거라네믿네 그녀의 맘은 변한 적이 없네.

글(文) 2025.03.27

마음 됨됨이의 사람

구름 때문에 대기권에 소리칩니다충치같은 발음이 돌아오지 않지요제트기류 탔겠죠설마 달에 슬쩍 닿겠어요2.0 시력으로 읽는 제목이 있을거면수억년 묵은 먼지가 일텐데요몇 차례 검진한 청력으로도 못 듣는 표면의 언어월석이 전하는 만월을 읽겠습니까밖에서 본 지구를 서술할 때면물이 시작한 진심을 먼저 듣고두툼한 구름 아래 햇살을 적는 마음나무가 우뚝 서는 걸 외면하지 않겠죠침엽 곁에 들꽃이 보이는 한낮의 그늘 귀퉁이눈시울 선명한 바람결이 선을 긋고귓바퀴 잔잔히 구르는 오솔길로 간대네요수십 마리 억지가 늑대로 뛰는 달밤에살얼음 방금 녹은 물가에서 가지런한 종아리 걷고수선화 한 페이지 읽는 시간덤불 속 멧새가 놀라지 않는 음성어느 때나 새벽의 기지개 같은 됨됨이로사람이 사람 때문에 사람을 모른 적이 있습니까나 때문이 ..

글(文) 2025.03.24

봄이 늦다

꽃은 피고 수은주는 오르는데 정계(政界political circles)의 봄은 아직도 살얼음 초입이다. 건너지 못한 수면 위의 얼음이 얇아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다. 그 위를 건너기 위해 갖은 갖은 수단을 강구하는 위정자들의 발굽이 건널까 말까 얼음장이 울렁인다. 많은 시간 여러 날이 새봄 오기 전에 꿈틀꿈틀 심정(心情)의 연못을 건넜는데, 구두굽이 하도 무거워, 아니면 맨날 잘 먹는 끼니에 몸이 무거워 갖은 보약을 섭취해도 허허실실(虛虛實實).........오락가락 판단과 결론의 무게가 계기판을 벗어나 망설이는 중량까지 짓누르고 있나보다. 에라! 건너가면 얼음장이 깨지겠고, 조금 더 있다가 살펴 건너면 녹아버릴 테고 진퇴양난은 전술(戰術)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봄을 맞이할 명분이 없는..

글(文) 2025.03.22

그림 같은 풍경 picturesque landscape

인터넷 이미지 사이트에서 '그림 같은 풍경'을 찾다 보면, 눈에 뜨게 멋진 사진을 발견할 수 있다. 국내 각 명승지, 전원풍경, 도시 전경을 검색해도 그림으로 재생하고 싶은 이미지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림으로 재현할만한 이미지는 열에 하나 꼽을 정도로 드믈다. 나들이나 여행 중에 찍은 사진들이 순간 순간 호기심과 충동에 이끌려 서슴없이 찍었을 때, 그림같은 시각을 놓친 채 셔터를 찰카찰칵 눌러대기 때문일까? 도저히 새로운 시각과 구도를 지닌 사진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목가적인 풍경을 원할 때 민속촌이나 시골 또는 전원 풍경 이미지에서 그나마 무난한 소재의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방편으로 '야외 스케치 튜어(野外 作畵 旅行outdoor sketch tour)가 있을 텐데, 야외 활동이 제한..

수채 풍경화 2025.03.20

메밀전 부칠 무렵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李孝石, 1907~1942 강원도 평창)의 '메밀꽃 필 무렵' 소설에서 허생원이 자기 아들일지도 모르는 동이와 함께 대화장(5일장?)으로 가던 달밤 으슥한 길에서  메밀밭이 있는 산길을 지날 때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소금을 뿌린 듯?'한 광경은 실제로 달밤에 메밀밭을 본 사람이면 조금 다를 수도 있다. 교교한 산간의 달빛 아래 부옇게 보이는 메밀밭 흰꽃은 굳이 소금이 아니더라도 '어머니의 푸르스름한 옥양목 저고리 빛'이라고도 (내 느낌으로)여길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메밀꽃의 달빛 광경을 처음 소금빛으로 묘사한 효석의 감성은 탁월한 시적(詩的) 감각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강원도의 척박..

글(文) 2025.03.19

눈雪이 꽃 시샘하네

세상의 발 아래 다 덮고도어디에 가리지 못한 구석이 있어아직도 내리나다시 또 내리나세상이 자꾸 걸어가며 찍어대는발자국 어느 몇 여전히 더러워가리고 싶었나포옥~ 덮고 싶었나세상의 종아리에 돋은 핏줄 만지며막혀 있는 세상의 말과 걸음슬개골이 아픈 다리와뻐근한 대퇴부의 하루에순면 내의 입히고신난한 셋방의 지붕 위온기 한 평방미터 씌울까 했나실없는 다리 없이 발맘발맘 다가오는꽃들의 까치 걸음그 발자국 세상의 보폭 아래또렷이 찍어 놓고 싶었나좀 이따 피라고 문자 전송 중이었나고단한 세상의 허리와 등을토닥일 게 먼저라고꽃필 짬이 아니라고밤 사이 소리없이 내렸나.

글(文) 2025.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