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코로나 15

쉼 대기가 오랜만에 맑은 숨을 쉬고 있다 땅 위에 있는 길이란 길은 다 달리는 차의 뻔질나기가 줄고 굴뚝을 숙주 삼아 솟아오르는 매연이 증식을 늦췄다 공중에 기생하던 먼지가 순진한 대기에 밀려 확대 번식에 제동이 걸렸다 차를 몰고 공장을 가동하며 먼지를 떨어내던 사람들이 과잉 동작을 멈췄다 어디에 잠복해 있던 제어 장치가 가동된 것일까 개발과 문명도 이루지못한 정화 프로그램이 실행 되고 있다 선한 인공지능이 임시 저장해 두었던 갱신 알고리즘에 접속 중이라면 사람 위의 아득한 개념이 예비해 두었던 계획을 이제야 가까이 풀어 내는 중이라면 열아홉번 째 세부 항목이 지구에 도달해서 개념의 균형을 서술하는 문장력에 대한 치명적인 경외 파일을 내려받는 위험 따위 감수하리라 끊임 없이 지구의 성장을 닥달하던 사람들..

글(文) 2020.04.21

지지 않고 열매를 맺는 꽃은 없다

가로수 벚나무 가지의 꽃이 모두 땅으로 내려가 버린 뒤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나뭇가지 마다 초록 이파리가 피고 있다 움추린 날이 더 많은 겨울과 옹송그린 시간이 더 긴 코로나 속의 거리에도 견디고 이겨낸 뒤의 갓길에 연두빛 싹이 돋고 있다 검진과 확진의 꽃샘바람 속에서 화사한 미소를 퍼뜨려 온 산수유 개나리 목련의 꽃잎도 땅으로 돌아간 뒤 품고 있던 초록 잎을 생기 넘치게 펴고 있다 지지 않고 초록 잎을 내는 봄꽃이 어디 있으랴 (꽃잎 떨구지 않고 씨방을 익혀가는 꽃이 어디 있으랴) 아버지가 땅 아래로 돌아간 뒤 손녀가 땅 위로 나왔다 어머니가 분말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간 뒤 손자가 땅 위로 내려왔고 내가 사회 계약에 해약의 싸인을 한 뒤 새 계약이 이루어졌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이 전국에 핀 후 코로나가..

글(文) 2020.04.11

벚꽃 지는데

가로수 벚꽃이 나뭇가지에서 지상으로 내려온다. 눈부셨던 어제가 아쉬운 걸까 바람을 발레리노의 안무 삼아 쿠페(coupe) 다른 꽃잎을 지나 긴 허리선 그으며 파세(passe') 벚꽃 발레가 바닥으로 잦아드는데 코로나의 군무는 막간도 없다 음악도 없이 커튼 콜 연속이다 마스크로 봉쇄한 입에서 코로나가 싫어서 나오지 못한 꿀잼의 수다를 참는 사람의 말들이 웅얼거린다 투명 망토 두르고 마스크 외벽까지 다가온 코로나가 말의 틈새를 노린다 된소리의 자음을 언제 하나 박아 넣을지 받침 없는 모음의 말들을 검진하고 있다 확진에 밑줄 친 모음이 벚꽃 따라 바닥을 미끄러진다 변종의 안무를 추는 바람과 조명을 맡은 햇살 마스크의 장벽을 믿는 말들이 수런대는거리 벚꽃 지는데 코로나는 더 피고 있다 코로나의 마지막 춤사위는 ..

포토샵 2020.04.03

언제쯤...

이 빈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일까. 공원 나무엔 새순이 돋고 목련 개나리 벚꽃은 피는데 사람들 얼굴은 피지 않는다. 차들은 엎드려 있고 사람들은 사회적 격리 자가 격리 애써 실천 중 봄은 웃옷 벗고 왔다가 지난 겨울 패딩 입고 왔다가 쭈뼛거린다 벌써 갓털 날리는 민들레 새 잎 팔 벌리는 씀바귀 공원 길 구석구석 어김없이 달세 입주 했는데 코로나 거리에 전세 구할 사람과 휴점 월세 걱정하는 사람과 하루벌이 사는 사람들 봄은 살랑살랑 바람을 데려오다가 쌀쌀한 바람을 뿌리치다가 새싹에 물주는 비도 데려오는데 코로나도 멀리 데려다가 묶어 놓고 왔음 좋겠다 봄에게 그런 능력 챙겨줄 이가 아쉽다.

글(文) 2020.03.26

닫힌 門 열린 門

봄은 예년 보다 일찍 문을 열었다. 산수유 개나리 목련 진달래 모두 문간에 내 놓았다 길섶에는 큰개불알꽃 (봄까치꽃) 명자꽃도 진열했다 아직 나비가 찾지 않는데도 어김없이 문을 열어 놓았다 우리 집은 문을 꽁꽁 닫았다 현관에는 손세정제와 분무기 소독약을 진열해 놓았다 닫혀 잇는 창문을 가끔 열어 놓는다 미세먼지 때문에 금세 닫는다. 택배가 오면 물건만 문 앞에 있고 택배 기사는 온데간데 없다 비대면 거래가 상식이다 물건을 소독약으로 소독하고 안에 들인다 가까운 사람도 전화로 문안한다 부득이 만날 때는 손을 잡지 않고 마스크로 입을 걸어 잠근다 마음은 열어 놓지만 입을 열어 놓지 못한다 이게 뭔 시튜에이션이야! 열아홉 살 코로나가 사람들을 문 안에 가둬 놓았다 동네를 가두고 도시를 가두고 나라를 가두고 세..

글(文) 2020.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