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습관으로 지은 전봇대 위의 집은 엉성했다
그러나 단단했다
22킬로 볼트의 전선이 건드리지 못한 채 지나갔고
변압기도 위치를 변경하지 못했다
더불어 살고 있었다
전기가 불편했다
전봇대를 세운 사람이 갈퀴와 사다리차를 몰고 왔다
퇴거 명령서도 없이 철거 명령만 집행했다
보상은 논의조차 없었다
출산을 앞둔 채 시골로 낙향한 그 해 늦여름
아스팔트가 산중 컨트리 클럽으로 기어가는 길섶 미루나무 가지에
풀냄새 짙은 나뭇가지로 흙을 묻혀 새 집을 지었다
엉성해 보였지만 단단해서 바람이 그냥 지나갔다
미루나무가 터를 내주었다
흔들릴 때 부서지지 않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세입자 수가 줄이든 공간이 광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텃세를 받기는커녕 달세도 약정하지 않았다
전세 계약서는 양식조차 없었다
눈비가 들러 손님으로 지나갔으며 햇살은 사정이 허락하는 한 매일 들렀다
곡식의 낱알과 벌레 과일이 지천이었다
쓰름매미가 여름의 치마 끝에 앉아 노래를 불러 주던 홈 스위트 홈 가락에
불어난 식구가 날개 춤을 추고 있었다
미루나무도 같은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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