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나무 읽기

담우淡友DAMWOO 2021. 3. 2. 11:37

  를 한 권으로 읽기가 불편했던 우리는
  그들이 잠적한 곳을 찾아 건널목을 건넌다
  븕으락 푸르락 노려보는 신호등을 의식하면서
  그들을 품은 한 건물 전체를 발견하고
  달고 있는 이름표를 소리나지 않게 읽는다

  소속 교실 학년 반 번호로부터 
  누가 어떤 성향의 녹엽 냄새를 풍기는지 살핀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을 때 
  그들이 꼼꼼히 필기한 학습 내용을 뒤적이며
  노트 장을 넘길 때면 각자의 특별한 머리칼 냄새
  옷 겉감과 안감의 섬유 내음을 가린다 

  난 테레핀 향 넌 린시드 향
  농도가 비슷했으므로 그 중 누가 여기로 온 까닭과
  우리들의 불편을 가장 잘 꿰뚫어 기술했을까
  끌밋한 이름의 한 권을 눈여겨 본다 
  맺는 말을 파서 뿌리가 어느 쪽으로 긴지 잰다 
  마침내 그가 어느 흙에서 멀리 왔으며
  어느 방향에서 가장 무성할 때 
  그 녹음 속에서 웬 곤충이 몇 번의 다산을 거쳤고 
  어떤 새들이 구전으로 악보를 수록했는지 자세히 읽는다

  한 권의 책이 되기 위해 저렇게 빽빽히
  몇 그루의 생각을 키웠는지 오래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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