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흑과 백 黑白BLACK & WHITE

담우淡友DAMWOO 2025. 1. 19. 07:30

 너와 내가 있다. You & me. 당신은 A이고 나는 B이다.여러분은 검고 나는 하얗다. 무슨 개 꽃 따먹는 소리야. 그들과 그들은 하나가 될 수 없다. 그 작자들은 저쪽이고, 이 작자들은 이 쪽이다. 어느 쪽이 물이고 땅인지는 생각(fith)을  처먹고 사는 호모사피엔스 인류세 잔당들의 아집(我執)과 불통(不通)에 왔다갔다 한다. 그게 정신학적으로 무슨 제목인가 모른채 칼과 방패에서 총으로 발전할 때,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근대철학의 아버지)라는 매부리 코에 눈썹이 갈매기 같은 인물이 커다란 눈망울 속에 이원론(二元論 dualism) 이라는 명제를 판서했다. 그 눈빛을 읽고나서 하늘과 땅, 신과 인간, 정신과 물질 이러구 저러구 You & me가 정착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빛과 그림자'를 이해하는데에 지대한 타이틀이 된 건 부정할 수 없다.

 우주(宇宙)와  무엇(無明)이 양립하는지 역시 알 수 없지만, 내 나라에 안마당과 바깥마당이 있어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문밖에서 웅성거리는 '주장의 이율배반'은 이원론의 망상에 빠져 이전투구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내 눈으로 보고 있는 상태에도 '그들과 나'의 두 갈래를 극복할 수 없지만, 적어도 어느 쪽이 정말 나라와 국민을 우습게 보는지는 좌우고면할 필요가 없다. 끔찍할 정도로 검고 흰 위정자들의 설왕설래를 듣고 있노라면, 스땅달의 Stendhal’s Le rouge et le noir이 나오고 평행이론이 입맛을 내는 까닭이 무릎을 치게 한다.   

 잘못을 모르고 부르짖는 쪽과 잘못을 알고 외치는 어느 쪽도 영원한 평행선에서 소실점(消失點 vanishing point)을 찾지 못하고 있다. 소실점을 찾지 못하면, 원근법(遠近法)을 완성할 수가 없다.먼 미래와 가까운 오늘이 손을 잡아야 유연한 선(線)과 면(面)을 갖출 수 있는데 말이다. 

 나라 살림의 원근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로와 까마귀들이 극렬하게 지저귀고 있다. 어느 조류에게도 고기 한 점 던져 주고 싶지 않은 조류애호가들은 모이 그릇을 껴안은 채, 빛과 그림자가 아니라 환한 빛만이 온누리에 번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조류 애호가쪽에도 들지 못하는 나는 이율배반의 양끝에서 조금 비싼 믹스 커피나 홀짝이고 있다.

 

 

이 쌀은 누구나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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