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광주호 여행기

담우淡友DAMWOO 2023. 10. 13. 06:22

별뫼별곡 운율 따라

 

 

'엇던 디날 손이 星山(성산)의 머믈며셔'

(어떤 지나가는 손님이 성산에 머물면서)... 내가 그 어떤 지나는 신객(新客)이 되어 프롤로그 나들이로 광주호를 찾았을 때는 11월 초순이었다. 가을 끝자락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햇살이 눈부시면서 따스했다. 추색 깊은 성산(星山별뫼) 숲에 별은 총총 박혀 있지 않았어도 대신 광주호 수면 위로 소슬바람에 이는 물비늘이 반짝이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차 밖으로 나오자 친구를 통해서 미리 '하늘가에 떠 있는 구름이 상서로운 돌로 집을 삼은', '샘물 흐르는 찻집'의 찻물 같은 여인과 함께 광주호의 상류를 마시고 자란 현지 태생의 동창 친구가 이정표처럼 서 있었다. 여기가 무등산 자락의 별뫼에서 광주호를 내려다보는 승지(勝地)라는 안내가 그들의 소탈 수수한 모습과 옷 무늬에 색색으로 적혀 있었다.

이내 끓인 찻물에 대추 향이 코밑을 지나 목젖을 어루만지며 내려가고, 그 느낌이 흐르는 물가를 따라 광주호 호수생탯길로 접어들었다. 아직 푸른 잎새의 세 그루 왕버들나무가 오래 이 곳을 지켜온 십 척 장신의 우람한 수문장을 자처하고, 갈대숲을 울타리 같이 두르고 오붓하게 자리한 비오톱(biotope)의 각기 다른 집 속에는 겨울나기에 좋은 온기와 아늑한 안식이 고즈넉하게 들어 있었다. 어렸을 때 장롱이나 다락방 구석에 들어가면 안온해지는 기분, 장작더미에서 풍기던 자연의 냄새가 그 속에 있었다. 갈대꽃이 바람결과 햇살에 화사하게 살랑이며 빛나고 있었는데 그 위로 멀리 보이는 무등산 정상이 웅혼하게 솟아 있었다. 한라산 꼭대기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지만, 백록담과 무등의 어감 차이는 동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웅자하고 넉넉한 품은 같아 보였다.

물기 차가운 바람을 흠뻑 마시고 부른 배 안으로 연잎에 소복이 담은 연잎밥의 여러가지 고소한 곡식 맛은 잠시 후에 보고 읽을 승경(勝景)을 즐기기에 충분한 애피타이저가 되었다.

 

'창계(滄溪창계천:광주호 조성 전 하천) 흰 물결이 亭子(정자) 알ᄑᆡ 둘러시니'

(창계천 흰 물결이 정자 앞에 둘러 있으니)...식영정(息影亭)가는 길에 면앙정가(俛仰亭歌) 성산별곡(星山別曲)의 가사가 면면히 휘도는 가사문학관에 들러 33, 혹은 44, 34보격의 운율 따라 마음을 사리다가 돌아 나와 그 음보에 가벼워진 걸음으로 서하당 부용당에 이르렀다. 서하당(棲霞堂)은 정자를 지은이의 호와 같고 부용당(芙蓉堂)에는 연꽃이 피는 못이라고 했지만, 부용화의 꽃말처럼 어느 섬세한 미모의 여인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안온하고 고요한 정기가 단아한 품위를 둘러 입고 있었다. 저 분위기가 선비의 갓 테두리 같은 그늘과 두루마기 성품을 재생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맘속으로 끄덕이며, 두터운 낙엽 층을 밟고나와 식영정에 오르는 긴 돌계단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림자가 쉬는 곳'일까 내 밑에 깔려 있는 그림자가 문득 힘겨워 보였다. 죽자 살자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속에 내 삶의 무게가 실려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식영정 그늘 아래 마루에 걸터앉자, 올라오던 돌계단 수만큼 내가 쉬던 날숨들숨이 비로소 쉬고 있었다. 완전한 쉼, 그리고 자기 그림자를 경계하는 선비의 마음을 일컫는 장자(莊子)의 어부(漁父)편에 등장하는 '자기 그림자가 두려워 도망치다 지쳐 죽었다는 바보의 우화에서 유래한 작명이라지만, 길목에 우뚝 선 노거송도 쉬고 있는 것일까? 그 당당하고 훤칠한 모습을 저절로 한참 쳐다보고 있게 했다. 내 몸이 아닌 내 자신의 그림자를 쉬게 한다는 성찰의 내용이 시원한 샘처럼 갈증에 메인 목을 축여 주고 있었다.

 

'믈 아래 ᄌᆞᆷ긴 ()이 ᄌᆞᆷ ᄭᆡ야 니러날 ᄃᆞᆺ'

(물 아래 잠긴 용이 잠 깨어 일어날 듯)....갔던 길을 되돌아 동남쪽 방향 야트마한 언덕으로 기와담장을 돌아 이른 환벽당(環碧堂)은 광주호 조성 이전의 옛 중암천과 성산의 푸르름을 휘둘러 광주호 인근 마을 충효리 출신의 김윤제란 인물이 지은 정자라고 했다. 식영정의 4(신선의 반열인가 보다)으로 일컫는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이 그의 제자이며 임진왜란 때의 김덕령장군이 또한 그의 종손이랬다. 역시 소나무와 활엽수로 둘러 11월의 녹음은 다색의 갈색 톤으로 스산하게 채색 되어 가고 있었지만, 풀밭 구석구석 남아 있는 녹색 풀잎이 아직 파랬다. 정자의 이름처럼 진짜 푸르름은 김윤제란 이가 중암천에서의 용꿈을 꾸고 나서 그 곳 용소에서 멱을 감고 있던 정철을 만난 일화에 있을 것 같았다. 화순 동복에 있는 누이를 찾아가던 정철이 타오르는 한 여름의 대낮에 의복을 훌훌 벗어 던지고 떡가래 같은 건강한 약관의 몸을 드러내고 있을 때, 그가 꿈틀거리는 용의 현신으로 보였던 것일까? 제자로 삼은 것도 모자라 외손녀와 정혼 시킬 정도로 반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화순의 동복(同福)은 시선(詩仙) 김삿갓(金笠)이 말년을 보내고 종명(終命)을 맞은 곳(구암리)이었다. 정철은 1536-1594 년 중종-선조 때의 사람이고, 김삿갓은 1807-1863년 순조-철종 때의 인물로 두 선인(仙人)2백여 년의 간격을 두고 이어지는 '萬古(만고) 人物(인물)을 거ᄉᆞ리 헤여ᄒᆞ니/聖賢 (성현)도 만커니와 豪傑(호걸)도 하도 할샤' (옛 인물을 거슬러 세어보니/ 성현도 많거니와 호걸도 많고 많다) 라는 운문같이 별곡이 달리 별곡이 아닐듯 싶었다. 김립이 무등을 지나면서 더는 동복에 머물면서 정철의 문력(文力), '엇그제 비ᄌᆞᆫ 술이 어도록 니건ᄂᆞ니' (엊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는가) 술잔에 비쳐보지 않았을까. 더는 그 자유로운 발길이 무등산 자락의 고개를 넘어서 광주호 이전의 창계천에 이르러 선인들의 글과 정서가 이끄는 정자들을 따라 발자취를 더듬지 않았을까. 그로부터 1백여 년 뒤에 김립을 경원하던 나는 비록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쓰지 못했지만, 그의 자취를 따라 여기저기 다니다가 역시 그 무등산 자드락길 고개너머 별뫼아래서 두 문인(文人)을 추억하고 있다.

사실 광주호 나들이는 광주시 북구 석곡천 제4수원지 청암교를 건너 청풍쉼터의 방랑시인 김삿갓 길을 지나 무등로 작은 고개를 넘어가는 김삿갓의 행적을 따라오다 그 곳에 사는 동창 친구와 찻집 여인의 인연으로 발길 닿게 된 경승지였다. 정철은 큰누이가 인종의 후궁이고, 막내누이가 계림군 이 유(李瑠)의 부인으로서 어린 시절 나중에 명종이 되는 경원대군과 친하게 지냈다는 왕실 인척이었지만, 김립은 (金炳淵, 1807~1863) 과거시험에서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관군으로서 투항한 수장 인물을 꾸짖는 글로 장원했을 때, 그 인물이 친 조부임을 알고 가세 몰락과 더불어 글로 조상을 욕되게 한 부끄러움에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방랑 시인생활로 한 생을 보냈다. 정철도 10세 때 을사사화로 매형 계림군이 역모에 휘말려 처형당하고, 아버지가 유배 길에 오르는 악연 시절을 보낸 것과 같이 서로 유사한 고초를 겪은 사이이기도 했다. 다만 정철은 복원하여 문과 급제까지 하며 영화를 누린 것과 달리 김맆은 평생을 아늑한 곳에서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고 떠돌던 비련의 인물이었다. 그게 더 내 마음에 닿아 여울지는 김삿갓의 생애이기도 했다.

 

다시 긴 돌계단을 올라 이른 취가정(醉歌亭)에서 환벽당 김윤제의 종손인 김덕령 장군의 취시가(醉詩歌: 醉詩歌此曲無人知-취해서 부르는 이 노래 속마음 알 사람 없네)' '꿈에서 그 취시가를 들은 권필의 화답가(和答歌: 分明一曲醉詩歌 -분명 이 한곡 취시가로다)' 를 읽었다. 광주호 옆 충효동 사람으로 임진왜란을 치룬 장군이었으나, 왕족 서얼 출신의 반란군인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사한 억울함과 허망함을 노래한 시가 취시가였다는데, 꿈에서 들은 그 시가를 깨어나서 내리 적었다는 권필(權鞸)의 신의가 참 두텁기도 하다. 취가정 처마 밑에 풍경 소리 없었지만, 막걸리라도 한 컵 마시고 삐뚜름히 한 바퀴 돌고 싶은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고사였다.

정자는 오래 되면 낡아서 빛바랜 설움을 되새기게 하지만, 글은 남아서 삭지 않은 옛 이야기를 가슴 적시게 읽어 준다.

나를 광주호 나들이의 신객으로 맞이해 준 친구 역시 김덕령의 후손이었다. 장군이 사람들을 모아 활을 만들던 골짜기와 장군이 자주 올랐던 바위까지 보여주고 함께 오르며 친구와 가을 열매 같은 순례를 마쳤다.

그 날 밤늦게까지 '샘물 흐르는 찻집' 여인의 손맛이 오롯이 배인 연밥과 디저트로 홍주를 마시며 '손이셔 主人(주인)ᄃᆞ려 닐오ᄃᆡ 그ᄃᆡ 귄가 ᄒᆞ노라'(손님이 주인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곧 진선眞仙인가 하노라), 깊어가는 밤 너머로 다시 찾아오고 싶은 성산의 푸르름과 광주호의 물비늘을 선잠 속에 차곡차곡 괴나리봇짐에 꾸려 넣었다.

 

내일은 절대로 지나칠 수 없는 절경이며, 맑고 깨끗하다는 소쇄원을 나들이 에필로그로 들러야지 하면서.

 

 

* 성산별곡 풀이 '나무위키 참조'

 

멀리 보이는 무등산

 

생태공원 비오톱

 

'글(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명終命  (2) 2023.11.04
  (0) 2023.11.01
시조時調 한 수  (0) 2023.09.25
밤(栗) a chestnut  (0) 2023.09.22
추석이 오면  (0) 2023.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