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전체 글 1230

장마 霖雨 long spell of heavy rain

임우녀(霖雨女). 그녀가 돌아왔다. 삼단 머리채 빗발 죽죽 늘어뜨리고 맨발 찰랑이며 물기 흠씬한 드레스 차림으로 왔다. 목 언저리의 레이스 무늬는 그대로지만 수분 함량이 백퍼를 넘었다. 조금만 닿아도 내 발부리가 젖는다. 막무가내로 기대어 오는 내 어깨가 금세 축축하다. 정신 나갈 정도로 그녀를 사랑한 적이 있다. 고향집 안마당에 그녀가 내리면, 개구멍을 빠져나가 밖깥마당 가장자리 배수로에서 물미끄럼을 탈 때, 막내삼촌이 만들어 준 수수깡 물레방아를 요염하게 돌렸다. 물레방아를 돌리는 매끄럽고 서늘한 그녀의 섬섬옥수를 들여다 보고 있다가 슬며시 잡으면, 신경섬유를 타고 측두엽까지 오르는 촉감이 정수리에서 아찔하게 소용돌이쳤다. 어깨가 젖고 바지 무릎이 온통 그녀의 침샘으로 빨래가 되는 것도 모르고, 맨..

글(文) 2025.06.21

소쩍소쩍

밤이 깊어 목까지 잠긴다짝의 마음 바닥에 발가락 닿지 않아솟을 적 내릴 적젖은 목소리가 수면위로 물안개 퍼진다하현달이 안쓰럽게 밤하늘 건너고창가에 귓바퀴 닿은 나는짝의 목덜미에 손길이 닿고귓전에 귀를 대면 들리는 노래그렇게 접동이로 살아가고팠던 시절신록이 푸르다 못해 슾으로 깊었다머리끝까지 잠겨서 접으면 동그랗게 솟을 쩍 내릴 쩍잠을 벗고 맨몸으로 풍덩했다돌아눕지 않는 짝의 등에 입술 닿고 싶어소리가 적다 소시쩍 노래가 있다변하지 않는 목소리가 밤 속에 잠긴다 새벽이 오면 목이 잠길 것이다..

글(文) 2025.06.19

개굴개굴

저물녘 강변 둑방길 옆 긴 논두렁이 악보다가로등이 비추고 있었고테너의 맹꽁이와 알토 음역의 참개구리가 같이 읽는다소프라노 맡은 국도변의 차들이 읊고 가는 팔분음표참새들이 꾸밈음을넣을 때 노을이 여운을 물들인다 베토벤 현재 버전의 전원교향곡 도입부내 귀는 자꾸 물가 쪽으로 기울고물결의 크레센도 청음이 징검다리 돌아간다오선을 긋는 수면 위에 백로가 사분음표를 달면자맥질 하는 버들치의 스타카토 저음이 갈대 끝에 걸리고내가 맡은 심금 악절에 아그그땅거미 기어오르는 목덜미에 바람이 간지럽다 4악장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는 합창에개밥바라기의 냉콩국수 저녁참이 당기듯잊었던 그리움이 한 악절 더 길어진다함께 두 음역을 맡았던 메조소프라노 강가의 세레나데간주곡에 넣어 까치노을 붉었던 그 날의 듀엣 맹꽁이와 참개구리의 ..

글(文) 2025.06.18

로보 사피엔스 ROBO SAPIENS

이건 문학적(文學的)인 상상이다. 인류는 원시의 지구 환경으로부터 지혜로 삶에 대한 사고와 도구를 발굴하여 생활을 개척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지식의 축적과 아울러 문화를 형성하고 사고의 깊이를 더해갔다. 이는 지식의 발전으로 이어졌고,산업과 기계의 혁명을 거쳐 고도의 문명을 창출하게 되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진화 현재론이다. 현생인류는 고도의 과학적 문명과 정신적으로 심오한 문화 속에서 이루어온 첨단의 생활방식으로 태양계의 지구라는 행성을 온전히 정복했다. 뭇 생명체 사슬의 우듬지에서 번영과 사치를 누리고 있다. 그 사치 속에서 디지털 문명 기술에 의한 AI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 생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과학의 실상(實像)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할..

글(文) 2025.06.17

풍경 유감 風景 有感

충북 영동 황간면 월류봉(月留峰).......풍광이 수려하여 지나던 달 조차 오래 머문다. 깜찍한 심안(心眼)이다. 햇살 따가운 낮에 밖에 올수가 없어, 이름에서 풍기는 달밤의 미안(美眼)을 마음 속에 켠다. 달빛 대신 햇빛 수려한 풍경에 시선 가득 밀려온 광경이 좁은 망막 안에 솔잎 설 자리 없이 빼곡 들어찬다. 실경(實景)을 잊으면 정경(情景)이 된다. 실경을 품을 수 없으니 스케치북에다 정경을 담는다. 그래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 물감으로 채색을 한다. 다 품지 못한 실경의 한 폭을 정경으로 옮겨 그린다. 실경을 재현(再現) 밖에 할 수가 없어서 아쉬운 풍경화다. 실경은 마음에 정경으로 담고, 잊을 수가 없어서 그림으로 기록한다. 잊을만 하면 그림을 보고 잊었던 실경을 기억한다. 한밤에 달이 머물다..

수채 풍경화 2025.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