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2022/12 10

세밑에는 촛불 켜자

해도 일찍 빛을 끄는 세밑 밤에는 조명을 끈다. 지나온 날들 중에 한 곳을 비추면, 드러나선 안 될 時와 時 사이, 分과 分 간격, 질러대는 시침 분침 따가와, 마구 미는 초침에 가쁜 숨이 드러나. 스폿 라이트 대신 촛불 하나 켠다. 책상의 둘레가 사각 방을 채우고 전등빛에 눈이 부셨던 책들이 깨어난다. 책은 친구가 아니다. 눈 안부신 촛눈에 눈을 크게 뜨고 내가 모르는 현재 시간 읽어 준다. 책의 언어는 구어체가 아닐 때, 문어체로 양양할 때 촛농도 조용히 흘러내린다. 책날개 모서리에 액상 크롬 철물로 다가와 글자에 힘을 싣는다. 나는 2022년 그 년한테 바람을 맞을 때 힘센 고딕체를 읽고, 그 년으로부터 키스를 당했을 때, 우아한 궁체로 입가를 서술한 것. 나는 그 플라우어 쉬폰 스커트 자락에 잠시..

글(文) 2022.12.31

또 한 사람 지구를 떠난 날

한국이 우물 같아서 샘은 끊이지 않지만 자기가 개구리 같이 눈만 커서 가로 세로 바다를 건너 다른 육지로 떠 돌던 그 당돌한 지구인 한 명 2미터까지 눈이 쌓이는 땅에서 회오리바람 하늘에 닿는 곳에서 여우도 머리를 제곳으로 두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곧장 폭풍우 구름 뜬 공중으로 떠난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 지구인 한 명 70킬로그램 무게가 줄었는데 지구는 품질 한 칸 내려가지 않았네 공중에서 내려와 일흔 해 태양이 아침을 켜고 저녁을 끄는 동안 파티를 즐겼고 대륙횡단 기차 만큼 코를 골았고 지구 때문에 걸었으며 가끔 신경질도 냈는데 웃지도 않고 떠올랐네 별은 다시 뜨고 달은 밤을 켜는데 손전등 하나 없이 어두운 공중으로 출발했네 대륙 보다 큰 우물 밖으로 나갔네.

글(文) 2022.12.28

이미 기다리고 있어

아마 적도 근처 어느 무더운 숲이지. 갯내 나는 입으로 봄의 남풍을 후후 심술 건장하고 살갗 까무잡잡한 사내가 꽃으로 힐끗 불면 단전 하얀 그녀가 화려한 꽃무늬의 봄으로 스륵 태어나지. 민소매 쉬폰 꽃 원피스 샤르랑거리며 남지나 바다 위로 파도 거품 타고 맨발로 오지. 제주해협 서풍이 부는 쪽으로 해안에 당도한 그녀가 사근사근 걸음으로 나주평야 건너서 무등산을 넘으면, 추풍령 아래 소쿠리 지형 구석에 사는 나는 귀가 밝지. 아무리 가붓한 그녀의 몸이라도 기다리는 내 마음 보다 1그램도 안 무겁지. 서릿발 선 앞뜰과 성에 지도가 세계적인 창가에 사는 나는 그녀가 왜 오는지 전국적으로 온도를 살피지. 그녀의 체온이 빙점 언저리 빙빙 돌지라도 기다리는 거리는 서울 부산 사이 어느 휴게소에도 있지. 멈추지 않고..

글(文) 2022.12.27

세모歲暮the year-end

삼백 예순 번 해가 깍꿍깍꿍 하는 동안 나는 아직도 유년에 사라진 엄마의 젖무덤 앞에서 아장아장 서성인다. 훌쩍 커서, 다 커서 아빠가 엄마한테 나를 심어준 의도를 탯줄 만큼 싹둑, 응애 메아리가 밤나무 뒷산을 저녁 해처럼 넘어간 뒤, 뒤척이는 꿈 없이 깍꿍 해 따라 아침을 켤 땐데. 전설에 따르면 나는 한참 동안이나 울지 않았단다. 이놈의 자식이 세상 싫은가 보다 했는데 양수 찌꺼기 다 걷어낸 뒤 해가 깍꿍할 때 이빨 없는 목청을 동백 만큼 붉게 게워냈단다. 얼음에 베인 엄마의 발꿈치 만큼 짙게 필 모양이다 콧수염 검은 아빠가 희떱게 웃을 때 엄마는 연년 생 새끼들 앞에서 이 자슥들 어느 해에 다 어느 구석에서 떨어진 운동화로 차를 만들어 바깥마당을 도나, 물음표가 다섯 번째였다.나는 바퀴 두 개 보조..

글(文) 2022.12.26

CHRISTMAS가 오네

시내산 쪽에서 오면 기슭 왼쪽으로 능선을 타면 되겠지. 핀란드 오른쪽 마을에서 오면 순록에게 눈썰매 슬라이딩 부탁해. 엄마 산타 아빠산타 동반 곁에 아기 산타 태우면 되겠지. 마을 벗어나기 전에 언니 산타 손 흔들 때, 크리스마스 전야 남친 양말 사 놓았을까. 파리에서 출발하면 런던을 돌아 베네치아 들르면 꽤 괜찮겠지. 어느 골목 모퉁이 오호호 ! 웃음 한 보따리 메고 코리아 항공편으로 우랄산맥 넘으면 상하이 쯤 기름진 자장면 점심도 좋아. 영종도 터미날 부산한 기쁨이 눈이라도 펑펑하면 더 좋겠어. 뉴욕발 산타가 태평양을 건널 때면 로스앤젤레스 이모댁 소식도 따라와 아이패드 화상통화 불을 켜고 반짝반짝 화려한 아침이 밝을테니, 그녀, 아니 그, 혹은 그 분이 오면, 기어이 온다는데 오신다면 뭐 어쩌고 뭐..

2022.12.21

올드랭 사인 Auld Lang Syne

겨울나그네60 2021. 12. 18. 14:47 연주 안익태 선생이 애국가를 작곡하기 전에 애국가로 불렸던 노래. 나라를 잃고 떠돌던 시대에 이 구슬픈 곡조의 애국가는 뭇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을 것이다. 이제는 본래의 스코트랜드 민요로 석별의 정을 노래하고 있지만, 여전히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또 한 세월을 보내는 아쉬움의 심금을 울린다. 청아한 트럼펫 연주에 이어 허스키한 색소폰 음율이 가슴 저 밑에 묻혀져 있던 애수(哀愁)의 기억을 바늘로 티눈을 파내듯 끄집어 올린다. *안익태Ahn Eak-tai:1906.12.5 -1965.9.16.작곡가, 지휘자.우리나라의 국가 〈애국가〉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한국 환상곡Korea Fantasy〉 관현악 작품을 작곡. (일제치하에서 〈만주 환상곡〉,..

글(文) 2022.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