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333

가을 과자

찰옥수수 튀긴 강냉이, 감자 튀김 스낵, 계란으로 구운 전병...어느 저녁 지인으로부터 받은 과자 봉지는 가을이 듬뿍 담겨 있었다. 가을에는 모든 것들이 여물고 익어가듯이 내게 한 가을 저녁이 과자처럼 노릇하게 익어갔다. 그리고 고소한 과자의 맛처럼 여물었다. 단숨에 감자(나는 감자바위-강원도 별명-출신이다) 튀김을 와작와작 비웠다. 감자를 한 끼니로 먹으며 자란 내력이 고스란히 반영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는 옥수수로 튀긴 강냉이를 집사람과 마주앉아 한 알 한 알 고향얘기, 친구들 얘기 오순도순 알갱이를 굴렸다. 옥수를 감자와 함께 한 끼니로 먹으며 자란 어린 시절 늦여름 추억과 수많은 알갱이 수만큼 많은 이야기가 식탁 위를 굴러다녔다. 봉지가 열리면서 이야기를 쏟아내는 과자였다. 평범한 서민의 한살림을..

글(文) 2022.10.25

가을 하늘

어제는 동쪽 파랑 초원으로 구름양떼 몰고 가더니 밤 사이 모두 양털을 깎았나 보다 선득한 오늘 아침 양털 카펫을 깔았다 초록 초원이 먼 땅에 사는 나는 별 수 없이 먼지 없는 물세탁 가능 도톰한 사계절 거실 사각 러그 카펫을 깔았는데 털실 빠진 직물 여백처럼 파랑 풀이 듬성듬성 드러난 하늘 양털 카펫 뵈지 않는 목자가 앉았다 간 귀퉁이가 눌려져 있다 가벼울 것 같은 그의 몸 무게가 중력을 얻었을까 낙엽 무늬 컬러풀한 땅 위로 지나간 자국 보일 만큼 환한 아침나절 나는 중력을 거부하고 창밖으로 나가서 코까지 파묻힐 만큼 폭신한 양털 카펫 위에 눕는다 주인 목자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공간은 파랗고 태양에 눈이 탈 듯이 시리다 이 대형 양털 카펫 어느 구석에 땅에서부터 먼저 올라와 늦잠에 빠져 있을 어머..

글(文) 2022.10.17

그대와 나의 그림

그대에게 있는 나의 것 내 안에 넣어 주세요 위치는 그대에게 있지만 쓰임새는 내게 넣어졌을 때 꽃사과 익어가요 쑥부쟁이 쑥스러운 길가에 참새가 멧새 곁으로 날고 비단벌레 건너갈 때 길냥이는 풀숲으로 들어가요 그대에게 있는 단 하나 나의 것 내 안에 있는 한 곳에 놓아 주세요 위치만 가졌을 땐 뿌리일 뿐이지만 쓰이기 시작할 때 단풍이 짙어가요 다육이 도톰하게 피어 오르고 나는 스케치북에 그려 넣어요 정물 같이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 파노라마 풍경을 그리며 우리는 그림처럼 쓰여졌어요 지우지 않고 계속 그리는 그림으로 그대에게 있는 나의 정물 내 안의 화폭에 넣어 주세요 비로소 색을 칠할 때 물관의 수문을 열었어요.

글(文) 2022.10.14

비 온 뒤 찬바람

가을은 망설인다. 이대로 추워져야 할지, 조금 더 더위를 유지해야 할지. 하늘 파랗게 코밭트 색으로 물들여 놓고, 몇 점 흰구름도 얹어 놓고, 활엽수 꼭대기를 울긋불긋 물들이다가 서늘한 바람에 잠시 쉬곤 한다. 바람이 물든 나뭇잎을 불어 날리면서, "곧장 가는 거야, 황소의 뿔처럼 고개 숙이지 말고!" 성화를 해도 가을은 집집마다 창가에서 서성인다. 아직은 변한 적이 없는 햇살을 끌어다가 창가에 걸어 주며 어디서 겨울이 호시탐탐 남하를 꿈꾸는지 귀띔하기를 미루고 미룬다. 그러면 밤새 몸 굳어 있던 잠자리, 나비.....떠날 시간이 임박한 날짜를 견디며 몸 풀고 나온다. 가을이 미적거리는 온기 속을 날으며, 계절을 따라 떠나고 남는 이치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가을은 더욱 마음이 붉어진다. 영영 떠나는 생명..

글(文) 2022.10.10

책한권은집한채와같다

시야가 좁다래져 가고 청각이 멀어져 간다 나는 어느 시간에 와서 어느 계절로 가고 있을까 길섶 웬 모퉁이에서 어떤 꽃을 보았으며 먼 바다의 첫 파도에서 소라고둥 소리 들었을까 아침과 저녁의 별을 적기 시작한다 정오에 하늘 가운데를 건너가는 달을 수록한다 개들이 산책할 때 개밥바라기를 놓치지 않는다 길냥이들도 페이지를 빠져나가지 않는다 봄이 마침표를 지날 때는 글자가 파릇했고 뙤약볕 냇가를 건널 때는 낱말이 시퍼렇게 여울졌으며 마스크 쓴 격리에도 불구하고 구절들은 여물어갔다 눈은 가끔 폭우처럼 페이지를 넘쳐 어느 해는 북해를 넘어서 극지까지 근심의 문장을 멈추지 않았다 세간살이마냥 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거실만한 희망과 다용도실 같은 꿈이 발코니 보다 아찔하고 늘 켜져 있는 데스크 탑 무소음처럼 조용하..

글(文) 2022.10.03

가을

아침부터 구름 양떼가 몰려가는 하늘 초원 목자는 보이지 않고 까치가 소리치네 목줄에 달려 산책하는 개는 관심도 없네 양떼는 동쪽으로 가고 있네 도시 저 편 산 너머 다른 초원 있나 보네 지상의 풀밭이라면 입 없이 얼마나 뜯겠나 구름 양떼는 하늘만 먹고 사네 몸 가벼워 소리없이 이동하네 땅에는 사방을 인파가 물결치네 풀만 먹고 살 수 없는 무리라서 초원 보다 식당이 많네 서쪽으로 갈 때 더 많이 먹네 당근 잘 먹는 말도 살찌는 가을이라네 쌈박질하는 나라에는 포연이 붉네 화약 냄새 좋은 먹거리는 나쁜 심뽀가 푸짐하네 할수없이 대응하면 먹지 못한 밀알이 상하는 심정 올가을은 남는 것이 불행한 시국이네 인파를 모는 붉은 목자는 양복을 입었네 땅에서 밖에 길 없는 초원의 망아지네 동쪽 햇살에 닿은 구름 양떼는 입..

글(文) 2022.09.28

천변공원

그 공원에 가면 자기가 하는 말에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아 자기가 응답을 하는 분수가 있다 나무들이 가만히 서 있고 의자와 잔듸들도 잠잠하다 그네가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말 소리 내고 있지만 분수가 하는 말은 귓등으로 넘긴다 분수는 목청껏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귀 기울이는 사람도 잘 모른다 더운 바람이 뭔가 아는 눈치로 분수 곁을 지나가면 분수의 말투가 슬쩍 흔들린다 바람은 댓글도 없이 가버린다 분수의 말을 받아 적는 수면이 가장 잘 알아듣는 듯 윤슬 반짝이며 물결 짓는다 귀 없이 꼼꼼히 알아듣는 걸 보면 자기들끼리 통하는 언어가 제법 푸르다 사이사이 삽입 되는 새들과 매미의 참견이 겉돌지만 초록 빛깔로 동색이다 그 곁에 말없는 베롱나무 꽃이 얼굴 붉다 분수의 시원한 말 속에 은밀한 고백이 들었을까 ..

글(文) 2022.09.20

커피 내리는 시간

창밖으로 본다 내리는 비를 비가 밖에서 내리고 안에서 커피가 내린다 비는 건물 벽에 금을 그을 때 '보인다'의 실금이다 커피는 포트 바닥에 고일 때 '내리다'가 보인다 한국의 경북 북부에 내리며 아프리카 중부 오른 쪽 사막을 보인다 원주민의 피부가 초콜릿 감촉이다 *분나(커피)에 젖은 옷자락이 내 유년을 펄럭이는 누이의 치마 같다 성당 벽 스테인드글래스 눈빛을 한 미사에서 *베아트리체를 처벌한 *교황에게 그은 X표 성호 그는 커피한테 세례를 주고 날개돋친 면죄부가 하늘을 잔뜩 흐렸다 커피가 수녀의 옷을 적시며 비가 창밖에 내린다 죄 없는 누이의 묵주처럼 또륵또륵 금을 긋는다 금은 지우는 권력이다 창밖의 비가 나뭇잎에서 오늘의 구슬로 구르고 사막의 커피는 바다를 건너와 방울방울 고인다 도기 컵 안으로 세게..

글(文) 2022.09.05

무료로 얹혀 사는 마음

DAUM에서 T-스토리로 이전하라고 했을 때, 기분이 좀 그랬다. 관리비 한 푼 안내고 살다 보니 '저 쪽으로 가라'고 하는 말이 썩 기분좋게 들리지 않았다. 주인장이 어떤 처지나 사정이어서 부득이 그랬다손치더라도 '저 쪽'을 가리키는 방향이 아스팔트 도로라도 이삿짐을 옮기는 짐수레가 꽤 덜컹거렸다. 무료로 얹혀 살면서 내가 한 일이라곤 여러가지 데이터를 만들어 이 방 저 방 꽉꽉 채우는 짓 뿐이었는데 그게 주인장한테 무슨 덕이 될지는 전혀 알수 없었다. 데이터가 값이라도 짱짱해서 주인장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헛간의 무슨 곡물이라도 되면 모를까 돈이 될만한 테이터를 생산했다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넓고 너른 공간을 맘껏 쓰고 있었는데, 저 쪽으로 가라니까 지레 소침해져서 계륵이라도 되면 모를까 잡동사니 ..

글(文) 2022.09.03

블로그 새 집

무료 임대주택 DAUM 블로그에서 이 곳 T-story 새 집으로 이사 가라고 했다. 집세 한 푼 안내고 살다 보니 가라고 하면, 예, 하고 가는 입장이 되었다. 새로 이사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정이 쩔다 못해서 블로그를 버릴까...욱! 했지만, 가진 게 살아온 데이터 뿐이니 이 걸 버리면, 내가 살았던 SNS 사회생활의 궤적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T-스토리라는 새 집에서 다시 이어갈 사이버 생활이 기대 반 설렘반, 주인장의 환영 인사를 받았으면서도 서먹하다. 전 블로그에서 해오던 짓을 셔츠 앞 단추 풀고 두 다리 쭉 뻗은채 계속하기가 선뜻해지지가 않는다. 뭣땜에? 콕 집어 말 할 수 없지만, 하여튼 얼굴 없는 새 주인의 익명성 실존을 느끼기까지 짧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

글(文) 2022.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