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331

탁란

-오월은 푸르고나 허리 긴 밤과 동침한 내 몸이 새벽 네 시 달덩이 마음 하나 낳았다 전등이 책상에 뉘고 갈피 울창한 책에서 글자를 물어다 먹인다 송이 스프 빛 내용과 엄나무 가시 따끔거리는 잔뼈 주는 대로 받아 먹은 마음이 오월은 푸르고나 날갯짓 한다 마음이 태어날 때마다 어디에서 흘림체 현안을 물어다 키우나 밤의 문장에 싸여 달빛 낱말만 쪽쪽 빨아먹는 나태의 서술형종결어미에 마침표를 툭툭 치나 전등이 책의 모든 앎을 읽는 책상에 올려 놓을 때면 내 몸은 갓 낳은 마음을 슬쩍 뒷 페이지에 끼워 넣는다 책상을 펴지 못하는 내 몸에는 뻐꾸기 울 무렵이면 몸 곳곳에서 흰자와 노른자를 품은 마음의 알끈을 내린다 어느 겉 장에 제목을 붙들어 매야 할지 이 밤 저 밤의 허리를 넘어 다니다가 전등이 글자를 키우는 ..

글(文) 2020.05.23

사월에서 오월까지

기억해야할 다짐들이 두텁다 배운대로 힘이 된 함성이 아침 햇살 붉은 산을 오르고 한꺼번에 바다를 읽은 교과서 밖의 오류에 관해 정답을 밑줄 치지 못한 한숨과 살균하고 찍은 눈도장에 실핏줄 금이가던 월말 이월한 근심이 이자로 불어 현금 창구가 자꾸 웃음 맴도는 노동 인출기 앞 불혹에도 살 떨리는 그리움에 눈물로 묘비를 읽는 학습의 불충분이 도려낸 살점처럼 흰 철제 울타리를 넘어 말을 거는 장미의 안녕 사람 앞에서 종종 걸음 이어가다 결국 길가 나무로 날아가는 참새 아이들이 와야 늦은 봄이라도 진짜 봄이라는 빈 운동장에 높이를 갖지 못한 다짐들이 쌓여 있다 첨성단 돌멩이만큼 반듯하게 기억의 두께 단단하려면 머릿속의 대용량 메모리 늘려야겠다 등줄기 모든 디스크에 클러스터 수백 겹 더 끼워 넣어야겠다 기억은 부..

글(文) 2020.05.19

5월

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지만 달력에 날짜 하나 빠짐없이 다시 등장하지만 오월이 끝나기 전에 달력을 떠난사람들은 숫자 빼곡 다시 채운 오월이 와도 그 날의 푸른 여운이 나무 마다 무성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문자조차 보내지 않는다 그들이 남기고 간 녹색 의지와 어투 새들 보다 더 낭낭했던 노래 누구나 듣고 있으면 녹색 파도가 들과 산으로 물결치는데 햇살에 은색 언어 여울 굽이굽이 반짝이는데 그들은 소리 없는 땅의 문자로 오월을 서술한다 봄이 되면 다시 싹이 트는 기억으로 말을 한다 묘비는 이마를 대고 듣는 유일한 경로 유월이 가고 칠월이 와도 땅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귀가 열린 사람에게 풀잎 소리로 들린다 오월은.

글(文) 2020.05.18

져 간 목련을 추억하다

져 간 목련을 추억하다 여덟 장의 마스크는 모두 흰색이었다 찬바람한테는 주먹을 내 보이듯 도톰하게 접어 두었다가 녹색 가운 걸치기 전 얼굴 먼저 피는 꽃들이 쉬쉬 바다를 건너 오는 감염 소문에 조심 조심 귀를 열 때였다 가지마다 촘촘히 여덟 장을 깨끗이 펴 놓았다 주먹질을 비켜 온 바람이 흔들면 나부끼면서 가지 사이로 빠져나가는 새들의 기침과 미열 오르는 햇볕 골목을 빠져나오는 증상의 모든 입에 꽃가루 묻혀 씌웠다 빵집에 들른 두통이 건널목 앞에 섰을 때 한 장 던져 주고 잠깐 집을 나온 격리에게도 한 장 삼 층에서 내려다 보는 의심한테는 네댓 장의 배달을 작정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택배의 정수리에 한 장 던진 조준이 빗나갔지만 한 구간 떠맡은 꽃들의 힐링 미소 몇 날 며칠 마지막 한 장까지 다 던져 주고..

글(文) 2020.05.11

마스크19-詩

마스크19 늘 가까웠던 공기를 밀어내고 내 입에 밀착한 놈이었다 위아래 입술을 통째로 부비면서도 깊숙한 혀 키스를 엿보는 놈 구취를 견디면서 허파를 공전하고 나온 숨을 온몸으로 빨아들였다 자전하는 등 뒤의 야채 같은 공기를 조금씩 바꾸어 들여보냈다 촉촉한 내 혀가 닿을락말락할 때마다 상하로 가슴을 떨었지만 법랑질 울타리를 너머 들어올 생각을 꿈에도 꾸지 않았다 놈의 등 뒤에는 야채밭을 짓밟고 온 스토커가 있었다 코와 입으로 동시에 허파까지 파고드는 속정 결핍의 사이코패스 막아준다는 구실로 양 볼까지 싸잡고 버티는 놈 놈의 보디 가드 철학엔 명제만 있을 뿐 논리가 풀잎이다 꽃잎에 입술 댈 때 서슴없이 비켜 선다 롱 타임 키스를 입 안에 넣을 때면 멀찍이 돌아서서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모든 물기 빼앗기고 ..

글(文) 2020.05.04

풀색 바이러스

풀색 바이러스 나무를 숙주로 삼고 있었다 겨울 동안 지면 아래서 렘수면에 빠졌다가 봄에 뿌리를 첫 감염의 풀랫폼으로 정했다 작년 실행 파일 빼곡한 기둥을 경로로 가지까지 이르는 회로에서 곁가지 하나 감염 완료할 때마다 꽃샘바람을 비프 음으로 활용했다 비슷한 시기에 서해를 건너온 코로나가 열아홉 왕성한 혈기로 사람을 검진하고 있었다 가지끝에서 발진을 시작했다 차츰 번져 나무 전체를 덮고 작은 풀까지 확진하더니 들로 산으로 번져 나가 연두색 올리브색 녹색 초록 기침으로 뒤덮었다 흥 흥 풀색 싱그러움을 앓아 뉘였다 마스크도 안 쓴 채 창턱에 앉아 햇볕을 임시 백신으로 접종하던 내게 각막에서부터 망막을 뚫고 어느 혈관을 타다 목덜미를 지나 위의 점막까지 다다랐는지 모른다 마신 녹차가 생각을 녹색으로 날염하 듯 ..

글(文) 2020.04.27

온라인 학교

온라인 학교 봄을 따라 어김없이 꽃들은 대지에 놀러 나왔다 참새들은 잊어먹지 않고 학교 앞 화화나무에서 노래를 불렀고 근린 공원 놀이터엔 햇살과 바람이 종일 그네와 시소를 탔다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개학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한 주만 더 늘이면 미처 못 간 중국 여행을 갈 것 같았다 밀린 학습지를 다 풀고 못 이긴 온라인 게임을 마칠 것 같았다 황해를 건너 온 춘장 향의 핑계를 만났을 때 개학은 학사 일정에 운명을 삽입했다 천이백팔십사 년 독일 하멜론에서 한 사내가 피리를 불며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진 후 이천이십 년 한국 전역의 학교에서 한 사내의 피리 소리도 없이 아이들이 사라졌다 개학은 비단 천 상의 안에 운명을 끌어안은 핑계와 손을 잡았다 기다리던 아이들 대신 교문 걸어 잠근 운동을 같이 뛰었으..

글(文) 2020.04.23

쉼 대기가 오랜만에 맑은 숨을 쉬고 있다 땅 위에 있는 길이란 길은 다 달리는 차의 뻔질나기가 줄고 굴뚝을 숙주 삼아 솟아오르는 매연이 증식을 늦췄다 공중에 기생하던 먼지가 순진한 대기에 밀려 확대 번식에 제동이 걸렸다 차를 몰고 공장을 가동하며 먼지를 떨어내던 사람들이 과잉 동작을 멈췄다 어디에 잠복해 있던 제어 장치가 가동된 것일까 개발과 문명도 이루지못한 정화 프로그램이 실행 되고 있다 선한 인공지능이 임시 저장해 두었던 갱신 알고리즘에 접속 중이라면 사람 위의 아득한 개념이 예비해 두었던 계획을 이제야 가까이 풀어 내는 중이라면 열아홉번 째 세부 항목이 지구에 도달해서 개념의 균형을 서술하는 문장력에 대한 치명적인 경외 파일을 내려받는 위험 따위 감수하리라 끊임 없이 지구의 성장을 닥달하던 사람들..

글(文) 2020.04.21

세월

세월 사월의 바다가 바람의 언어를 반포한 날 하늘이 보태준 모음의 수평선에 해례본을 저장했다 소금기에 절어 변하지 않는 자음에 모음이 비 내릴 때 시간과 흐름이 파도로 적히는데 후음과 순음이 인체를 닮았다 바다는 사람에 의해 거리와 시간의 비례가 생겼고 망망한 설명 속에서 중심 낱말의 위치를 밑줄 칠 수 있었다 쉼표와 마침표가 계속 찍혔지만 문장은 수평선을 이어갔고 보이지 않는 내용이 시간을 따라 흘렀다 어떤 폭풍에도 수정 되지 않았다 바다의 국어가 되어 모든 어부들이 어로의 기본으로 읽었다.

글(文) 2020.04.18

투표-詩

투표 섭조개 껍질 안에 나를 적어 던지는 모래톱에 손등까지 올라온 캄브리아기의 첫 파도가 바다의 진심을 읽어 주리라 바다를 좋아한 엄마는 거품의 일부를 전체의 하나로 주장했다 낚시에 열중했던 아버지는 조개 무덤에서 갯강구를 잡아 미늘을 감추었다 결과로 선출한 남매를 오늘날까지 최고의 선택으로 믿고 있었다 내가 누나를 시집 보낸다고 했지만 누나는 나를 장가 보냈고 병특에서 포닥으로 국민 앞에 설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력서를 팔아서 가족의 민심을 사는 플랜 비 가동 후 간신히 고향집 옆에 달세 살림을 차렸다 가끔 바다를 모니터로 본다 고생대의 절절한 적막을 발견할 때마다 섭조개를 버너 불에 구워 파도 맛을 차별 없이 풍기던 해변의 저녁을 떠올린다 인공 쓰레기가 잠복한 모래톱에는 청렴한 갈매기가 맨몸으로 걸어..

글(文) 202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