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331

비오는 날의 피크닉

비 오는 주말에는 소풍을 간다 바구니에 어제 구운 과자와 머핀을 담고 오전에 만 김밥과 깍뚜기 크기로 자른 수박을 함께 넣고 끓인 물 담은 보온병과 스틱 믹스 커피 몇 개 챙기고 빠뜨리지 않은 우산과 태블릿 피시 차에다 싣고 나서면 잠시 비 그친 먹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에 더워진 차 안 차창을 열고 달리다 보면 후득 후득 떨어지는 빗방울 이런 날은 호랑이가 장가를 간다던데 그러면 여자 호랑이가 시집을 갈거라는데 허튼소리 웃으며 도심을 벗어나 공원 숲에 다다르면 마스크 쓴 사람들 속에 안 쓴 사람들 섞인 공원길 걸어 외딴 정자에 들고 온 바구니를 내려 놓는다 먹어야 할 항목과 인증 샷할 장면과 돌아보아야 할 풍경 미풍이 다가와서 대면 인사를 하고 비대면 매미와 새들과 곤충의 소리 혹은 근접 인사 등과 ..

글(文) 2020.07.26

매미

2020년 7월20일 아침 5시20분 첫 음원이 공개 되었다 운집한 나뭇잎과 늘씬한 기럭지의 기둥들 벤치와 민의자들도 빙 둘러 앉아 있었다 칠 년여 땅 아래 공화국에서 주거지 걱정 없이 자유롭게 음을 골랐다 나무 뿌리를 오선으로 삼아 수액의 흐름에 따라 음표를 달았다 발성이 금지 된 땅 아래 나라에서 침묵하기 보다 단 열흘을 살다 떠나더라도 열두 시간 해가 뜬 다는 땅 위의 나라 리퍼블릭 코리아의 케이 팝에 이름을 올리고 싶었다 맘껏 노래하고 싶었다 참매미의 참다운 목소리에 한 여름 작렬하는 환호를 느끼고 싶었다 월세와 전세마저 땅 아래의 깊이 보다 더 높은 땅 위의 국가에서 오래 견디기 보다 여름 한 철 원없이 노래 부르다 부르다 이슬 먹고 살았듯이 다시 맺히는 이슬처럼 긴 침묵 속에서 다음 싱어를 길..

글(文) 2020.07.20

형제가 모일 때

오전이라면 잠깐 비 그치고 잿빛 구름 뒤로 햇살이 비치는 중이라면 양친에게 귀염받았던 얘기 형에게 박하사탕 하나 얻을 때 엄마의 힘을 빌린 기억 동생의 수박 바 한 입 날쌔게 가로 챈 그 날의 강수량과 습도 그리고 바람의 방향에 찾은 앞산의 울창한 녹음 서로 목소리가 밝다 오후의 무더위를 참은 뒤 잿빛 구름 사이로 낙조 한 자락 누나의 흰 땡땡이 감청 원피스 떠오르면 양친이 누나에게만 쏟은 십 기가바이트의 사랑 에스에스디 하드 빠르기의 재생이 눈부신 형의 유산 상속과 영구 저장한 동생의 유산 포기 동의서 몇 장 어둑해질 때까지 형은 어떻게 종가를 지키고 있는지 동생은 언제까지 누나의 결핍을 형이 채울 것인지 서로 목소리에 땅거미가 스멀거린다 우리가 핏줄인 건 맞지만 한 번이라도 핏줄을 묶어 한 다발의 질..

글(文) 2020.07.12

장맛비

남쪽 바다와 땅에서 머뭇거리던 장마였다 전선을 북쪽으로 확대했다 어디를 향해 물총을 쏴야할지 정한 모양 이미 쏠만한 곳에 싫컷 쏴 울어야할 사람들은 울고 넋을 놓고 희망을 잡을 사람들은 잡고 우리가 사는 곳에도 울만한 사람과 오늘을 놓고 부여 잡을 내일이 곳곳 있다 장마가 다연발 물대포를 장전하는 동안 우리가 설치한 과녁이 용량 미달이거나 색깔이 자연스럽지 못해 조준이 빗나가서 믿었던 축대 귀퉁이가 무너져 내릴 때 사람을 탓했다 비가 실탄인 장마의 사격을 나무랄 수 없었다 오늘 장마는 철갑탄을 격발하지 않았다 전선을 구축한 아리수 강북에서 맞으면 가슴이 축축해지는 물탄이 수 백 탄창이다 장마의 무기가 비 뿐이 아니라는 걸 어떤 사람이 흠뻑 젖은 뒤에야 알았다 장마는 이기는 것 보다 흐느낄 때 더 전사답다..

글(文) 2020.07.10

이슬 아침

다섯 시 언저리 여름 아침 일제히 동쪽을 바라보며 깨어나는 집들의 숲을 지나 장마 구름 밤새 가림막 친 하늘 아래 오로지 달 때문에 핀 달맞이꽃 산책로에 들어서면 장맛비 섞인 물빛 말말 속삭이던 직지천 여울 초입 낯설게 모처럼 나란히 서 있는 잿빛 왜가리와 흰 모시 색 백로 인종 차별 없이 물고기 수를 나누고 있었나 보름달 밤 수상하게 밀어 한 사발 나눠 뜨고 있었나 그 와중에 침방울 마스크도 안 쓴 채 잊지 않고 사회적 격리 사이로 여울 언어 은빛이다 겉잠 한 번 들지 않고 이슬 낱말 촘촘히 받아 꿴 갈대의 대면 학습 내용이 푸르다 못해 서늘하게 맑은 코로나 팬데믹의 아침 이슬 문장으로 핑크 빛 꿈을 흠뻑 내리 적고 있는 핑크뮬리조차 아직 그린뮬리 학습 중인 천변 야외 자연 교실 농작물 경작 금지 나뒹..

글(文) 2020.07.05

두견이

조성연 두견이가 밤새 여친을 찾고 있다 여름이 시들기 전에 제 알을 얻어야 한다 한동안 안전히 맡길만 하게 일찌감치 눈여겨 보아둔 휘파람새의 집이 근처에 있고 건강한 그 집 부부가 상수리나무 숲을 날고 있었다 목소리에 한껏 슬픈 음정을 담았다 전세금이 올라서 셋집 마련이 물거품 되었다 달세방 얻을 보증금도 빌리지 못했다 대대로 내려온 에스엔에스 육아 정보도 없으니 아, 우리는 왜 생겨났을까 마음 여린 여친이 잠깐 귀를 열었다가 신록의 녹음으로 푸르러진 가슴에 그만 접동 접동 파르라니 심금이 떨렸다 잠시 장맛비 멎은 하늘의 상현달 때문이다 그녀의 깃털이 눈부신 걸 두견이는 밤 눈으로 환하게 보았다 어쨌든 구애 수행은 평가 되어야 한다 목청껏 아침녘까지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글(文) 2020.07.03

직지천의 아침 풍경

페르권트가 길가에 나앉았다. 마스크도 안 쓴 입을 열고 곧추 앉아 있다. 가로수 나무가 우두커니 옆에 서 있는 건 서로 우두커니에 갇혀 있기 때문일까. 모짜르트가 저 하얀 치아를 입질하며 지나갔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가 검은 이빨을 부드럽게 핥은 적이 있을 것이다. 바이엘을 따라가던 고사리 손들이 저 입 속에서 음표를 파내던 시간의 자국이 생생한데 아침이 기지개 켜는 거리에서 우두커니에 몸을 맡긴 피아노 곁을 지난다. 경부선 철길 아래 굴다리를 가로질러 우회도로를 건너면, 황악산 골짜기서 발원한 계류가 직지사 경내를 질러 나와 중생들이 아기자기한 동네를 만지작거리며 내려온다. 잠깐 한눈을 팔겠지만, 추풍령 단전 아래서 출발한 직지천 중류와 손을 잡고 하류 천변에 이른다. 제딴에 서두른 눈친데 겨우 동쪽 ..

글(文) 2020.06.25

뻐꾹뻐꾹

뻐꾹뻐꾹 그 노래는 새벽부터 산에서 내려왔다 원룸 단지 골목을 지나 파란 불 건널목을 건너 소방도로 세 줄을 가로질러서 이 모두를 오선으로 사분의 이 박자 음표를 배열한 덧문 열어 놓은 우리 집 삼 층까지 긴 악보를 걸어 놓았다 나는 건물주의 높은 근저당 설정과 세입자들의 전세금 대출이 사 층 목까지 차 오른 이 빌라에 마지막 순번으로 세 든 전세 임차인 귀에다 악보의 첫 마디를 밀어 넣을 때마다 달팽이관에서 뚱뚱해지는 뻐꾹뻐꾹 사 년 동안 해마다 새로 낳은 마음을 맡겨 키웠다 비가 올 때 습기를 충분히 먹였고 바람이 불 때 창밖 나뭇잎 소리를 들려 주었다 며칠 후 내가 떠나면 또 누군가가 맡겨 키울 마음 담고 고단한 삶의 한 때를 저녁마다 쉬려고 찾아들겠지 뻐꾸기가 그 악보를 다시 늘어뜨리겠지.

글(文) 2020.06.03

부르기만 해도- 詩

부르기만 해도 조금 있다가 아니면 내일 물어도 마스크에 가려진 오후가 아니 되는 걸 물으려고 거리 두기를 무릅쓰지 않고 침방울이 목소리 앞에서 먼저 달려가는 빠르기로 삼십여 년을 매일 빠지지 않고 한 집 여백을 쓴 간절할 것도 없는 어쩌다 띄운 문자와도 같은 여보라고 부르기 잠시 보이지 않아도 찾으면 책상의 구석에 있는 샤프와 같다 심이 부러져 딸깍 마음 누르면 심이 계속 나온다 가늘고 선명하게 오래 쓰듯이 부를 수만 있어도 보통 때와 같이 좋은 아침 보면 벽에 걸린 풍경수채화의 액자 같은 여보 코바이디즘 covidism이 뭐야 미술사에 이런 화파가 있었나? 당장 물어도 푸른 미열 오르는 신록으로 울창하다.

글(文) 2020.05.31

Post-covidism

코바이디즘covidism 비대칭 화면에서 인물의 배치는 차가운 추상을 연상 시켰다 색깔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치밀한 조화를 구현해 냈지만 간격 보다는 외면에 각도를 더 할애했다 뭉크의 절규를 패러디한 전기 코바이디즘 화풍이었다 황사 마스크를 오브제로 화제에 붙여넣기한 중기 코바이디즘 화풍에는 기침으로 붓질의 속도를 조절했는데 침방울을 드로핑하여 화면의 질감을 높여갔다 메이드 인 차이나 안료에는 레드부라운의 가래가 점액질을 구성했으며 미세한 붓질까지 점점 세밀하게 감정의 골을 작품에 상감하고 있었다 반복하는 봄이 올 때마다 아틀리에 갇혀 안료를 덧칠했으며 계절에 상관 없이 회색 안료로 화면을 덮을 무렵 작품 구성에 정물의 간격을 주제로한 한국발 화풍이 발현했다 대칭의 관계에서 풍기는 미의 각도가 화면 가..

글(文) 2020.05.28